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DT현장] `핀란드式 정치` 한국선 왜 안되나](http://contents.dt.co.kr/images/201912/2019121902102269607001[1].jpg "[DT현장] `핀란드式 정치` 한국선 왜 안되나")
산나 마린 총리는 취임하면서 전체 19명의 장관 중 12명(63%)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카트리 쿨무니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32세, 마리아 오히살로 내무장관은 34세, 리 안데르손 교육장관은 32세다. 마린 총리를 포함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5개 정당 대표 중 4명이 30대 초반이다. 유례없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출생자) 내각'이다.
고용부, 보건부, 지방자치부, 과학문화부 등에도 여성 장관을 배치했다. 외교부, 국방부, 교통·통신부, 농림부 등 7개 부는 남성 장관에게 돌아갔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여성 장관 비율이 2014년 기준 27%인 것과 비교하면 핀란드는 그 2배를 훌쩍 뛰어 넘는다. 가히 여성이 통치하는 '아마조네스의 나라'다.
핀란드의 정치지형이 '밀레니얼 세대' 중심으로 바뀌게 된 이유가 뭘까. 30대가 한 국가의 정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저소득 싱글맘과 동성 파트너 사이에서 성장한 마린 총리는 2015년 의회 진출 직후 "고등학생이 된 후 기성 정치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며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30대 여성 총리의 등장이 떨떠름했나보다. 당장 이웃나라인 에스토니아가 반응을 보였다. 70대 내무장관이 마린 총리를 '여점원'(sales girl)이라고 조롱했다가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부랴부랴 사과했다. 그만큼 핀란드의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핀란드는 내각의 세대교체를 통해 개혁과 진전이 가능한 새로운 정치구조를 만들어왔다.
법과 제도로 보장된 청소년층의 활발한 정치 참여도 핀란드 밀레니얼 세대 등장에 한 몫 했다. 2006년 제정된 청소년기본법 8조는 "청소년에게 반드시(must) 지역사회의 청소년 단체 및 정책을 다루는 일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회 역시 행정부와 별도로 2003년부터 청소년 정치 참여 정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총선에서 입후보한 후보자 2468명 중 18∼40세 후보자의 비율은 34%인 849명에 달한다. 의회 200석 중 45세 이하 의원 비율도 48%이며 20대 의원도 무려 8명이다. 핀란드는 일찍부터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적극 보장했다. 1906년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부여됐다. 이 때부터 여성이 정부 고위직에 적극 진출했다. 1990년 세계 최초로 여성을 국방장관에 기용한 나라도 핀란드였다. 2003년 여성 총리가 처음 탄생했고, 마린은 역대 세 번째 여성 총리다. 게다가 의회 전체 200석 중 93석을 여성이 가져갔다. 거의 의회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밀레니얼 세대교체 바람이 거센 핀란드와 달리 우리 현실은 절망감만 안겨준다. 17대 국회에선 23명이던 30대 의원이 20대 국회 들어 단 3명으로 뒷걸음질 쳤다. '86그룹'이 30대였던 2000년대엔 17대 국회에 대거 입성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 수가 대폭 줄어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8.7세에 달한다.
여야는 내년 총선을 목전에 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쇄신을 부르짖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5선의 원혜영 의원과 3선의 백재현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백 의원의 불출마의 변이다. "제도 개혁을 통해 물(정치문화) 자체를 바꾸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물고기(의원)만 바꾼다고 해서 제대로 가는 게 아니다." 옳은 지적이다. 쇄신 주장이 허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고인 물은 흘러보내고 새 물로 채워야 한다. 청년세대를 제도권 정치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 정치에 새 살이 돋는다.
내년 21대 국회에서 좀 더 많은 밀레니얼 세대를 만날 수 있을까. 연말 '막장 국회'를 보면 이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할 것 같다.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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