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훈 (사)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회장ㆍ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기고] 감염병시대 과학자의 재발견](http://contents.dt.co.kr/images/202005/2020051102102269660001[1].jpg "[기고] 감염병시대 과학자의 재발견")
감염병시대 과학자의 재발견 남승훈 (사)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회장·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세계보건기구(WHO)가 범지구적 유행병(팬데믹) 선언 이후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학교는 수 차례 개학을 연기했고, 국내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이고 국가 간 이동은 오랜시간 제한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진단 기술과 방역체계, 그리고 정부의 팬데믹 대응 시스템으로 세계의 영웅이 되었다. 재난문자와 자가격리앱은 물리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주변을 통제하는데 탁월했다. 세계적인 비상시국에도 주권 행사를 위한 선거를 시행하는 유일한 나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과거 사스와 메르스 사태 등 바이러스 감염병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준비된, 기초 진단 검사에 대한 연구개발 덕분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는 지속가능한 연구개발 투자와 핵심기술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과학기술의 영향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팬데믹 대응책으로 국가 간 분리주의를 강조함에 따라 비대면 수요가 증가해 온라인 강의, 온라인 유통 등 디지털 플랫폼 기술이 중요해졌다. 또한 재택근무가 증가하여 제조 생태계 변화에 대응할 기술이 필요해졌다. 생산인력 감소와 글로벌 생산체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스마트 팩토리 등 과학기술에 기반한 제조기술 개발 및 활성화를 주도해야 한다.
가장 먼저 코로나 사태를 겪은 중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감염증에서의 최종 승리는 과학기술 뿐"이라며 바이오제약, 의료기술 등의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밝혔다. 자국핵심기술이 세계로 번지고 있는 '죽의 장막'의 강력한 대응책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위기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의료, 경제, 교육, 금융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언택트 기술을 기반으로 각 산업이 변모할 것이라 예상했다. 시대의 요구가 신기술의 거침없는 시도와 더불어 과학전문 정책과 규제를 이끌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중 눈길이 가는 대목은 전 플로리다 주지사인 미국 정치인 젭 부시의 예상이다. 그는 지역 지도자들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위기 대처 역량과 전문 지식이 존중받을 것이라 말했다. 이러한 기조는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로 이어진다. 그는 3월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코로나는 다가올 날들에서 우리가 근거 없는 음모론과 이기적인 정치인들을 넘어서, 과학적 데이터와 보건 전문가를 신뢰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정보 공유가 익숙한 현대인들의 박식해진 눈높이는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위기관리 역량을 지도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세계의 석학들은 이미 감염병 출현이 빈번해질 것이라 예상했다. 향후 감염병 대응과 사회 안정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인류의 안전 보장과 빠른 속도로 변하는 미래 사회의 대비는 더욱 탄탄한 과학기술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우리는 국가 긴급 사태로 전문 관료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전문가는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현상 설명과 해석을 돕는 조연일 뿐 중요한 정책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 실정이다. 국가재난 사태를 극복할 때 정부부처나 정치계에서 활약해야 하는 최고 전문가인 과학자의 위상이 지금과 같다면 미래 대비는커녕 땜질식 대처만 반복될 것이다.
물론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대처일지라도 초기 코로나 사태 시 보여준 일관되지 못한 대응책, 현재 연구현황도 모른 채 진행된 무분별한 코로나 사태 대응 연구과제 발주, 경제 효율을 이유로 불균형 과학계 성장에서 촉발된 소재·부품·장비 사태 등 돌아볼 것은 많다.
국민들은 자연재해, 팬데믹, 자국보호주의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란다. 행정을 바라보는 국민의 수준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정책대안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과학기술 분야만큼은 행정관료 보다 전문 과학자 중심으로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의 제안이 국가정책이나 제도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현장 기반으로 과학계를 대변할 전문 과학계 출신 관료와 정치 인사가 아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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