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월간객석 발행인
![[포럼] 코로나 위기에도 예술혼은 살아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07/2020070302102369660001[1].jpg "[포럼] 코로나 위기에도 예술혼은 살아있다")
제가 아는 연주인들도 한가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간혹 무관중 공연이나 온라인 중계로 공연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객석의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전의 순간을 너무나 그리워합니다.
공연 관계자들 역시 이제나 저제나 해금만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던 연주자들은 보다 안전한 우리나라로 속속 귀국하고 있지요. 그들과 안부를 나누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국에 다 모여 있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몇십 년 안에는 보기 힘든 현상일 텐데 이들을 다 모아서 함께 사진을 찍어 커버스토리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죠. 바쁜 외국생활 탓에 서로 얼굴 보기 힘들었던 음악가들에게는 물론 코로나로 지친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도 너무나 반가운 만남이 될 것 같았습니다.
6월 초부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모처럼 고국에 돌아온 그들 중에는 가족이 있는 지방에 머무는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주인은 미뤄뒀던 결혼식을 치르느라, 갓 태어난 딸을 돌보느라,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지요. 6월 12일, 중림동 언덕에 자리 잡은 객석의 새 보금자리로 모인 젊은 예술가들은 36명. 모두 해외에서 한국 클래식 음악과 무용계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독일, 프랑스, 핀란드, 미국 등지에서 온 그들은 만나자마자 반가운 인사를 나누느라 떠들썩했습니다. 학교 동문인 친구들도 있었고, 여러 번 함께 연주한 경험도 많았기 때문에 비록 각기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치 한 팀처럼 호흡이 잘 맞는 게 신기하더군요. 아마 연령대가 비슷해서 그랬을까요? 꿈 많은 20~30대 (이중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 양만 10대입니다)인 그들은 촬영 전 서로의 포즈와 옷매무새를 잡아주는 등 정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연주인들을 한 컷에 잡으려니 기자들은 물론 사진작가들도 고생이 많았지요. 웬만한 스튜디오 규모로는 단체 촬영이 힘들었으니까요. 결국 '객석'의 새 사무실에서 가까운 약현성당과 가톨릭 출판사를 배경으로 삼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101년) 성당이 지닌 고난의 역사와 현재 우리 젊은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위기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역시 '예술가'였습니다. 성당의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단체촬영을 마친 후 각 악기군으로 따로 모인 장면을 비디오 등으로 찍느라 오랜 시간을 대기하면서도 밝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죠. 아마 그들도 알 겁니다. 앞으로 이렇게 모두 모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란 사실을요. 한편으로는 저렇게 재기발랄한 친구들이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마음껏 재량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요.
사실 그들 모두의 관심사 역시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모인 음악가들 대부분이 미혼이라 아직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의무는 없지만 그들의 눈에 드리운 어두운 앞날에 대한 걱정은 몇 마디 말을 통해서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지나면 괜찮을 것 같다는 낙관론과 금년 겨울도 지나 내년까지 간다는 비관론이 그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이 기간을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으라"는 구태의연한 말 한마디가 전부인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음악가들은 태생적으로 참 맑고 밝습니다.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대단한 노력과 집념을 갖고 있지요. 그런 그들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관객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테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예술 관객층을 더 넓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릅니다. '객석'은 바로 그 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예술과 관객의 좋은 중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더군요.
문득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음악가가 가난하냐, 미술가가 더 가난하냐라는 질문인데요, 예전의 한 통계에 의하면 두 예술가 집단의 한 달 소득이 백만 원도 안 된다고 나온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참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곤궁한 시기에 노원구에서 지역 내 거주하는 예술인들에게 지원금 각 백만 원씩을 우선 지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무척 용기 있고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국민 모두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예술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2, 제3의 노원구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날 촬영장에 와준 36명의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합니다.
PS: 좀 자랑 같지만 사실 '객석'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을까요. 그날 '객석'의 애독자이기도 한 지인의 후원으로 최신 세안제를 한 통씩 선물로 나눠주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요즘은 잘 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더구나 한국 예술가들의 재능을 세계 무대에서 꽃 피울 그들의 얼굴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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