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포럼] 위기의 대학, 근원적 고민 시급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07/2020071302102369061001[1].jpg "[포럼] 위기의 대학, 근원적 고민 시급하다")
첫째, 강의의 품질이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의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전달하는 기술적인 환경과 강의 컨텐츠에 대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두 영역 모두 불만이 많았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가 온라인을 사용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 음성이 지직거린다는 것, 영상강의 도구의 사용법을 잘 모른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이미 고등학교 재학시절 고품질의 인터넷 강의를 경험한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원격강의의 품질은 대학에 대한 기대가 컸던 학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강의 컨텐츠에 대한 실망감은 특정 사례를 통해 이슈화되었다. 10여년 전에 촬영한 동영상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한 사례, 강의 배경에 사용된 컴퓨터 환경이 이미 단종된 인터넷 브라우저인 경우 등 최신화 되지 않은 컨텐츠를 급하게 원격강의로 제공한 경우가 있었다. 그 결과 학생들의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마디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강의'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한학기 동안 열심히 준비하고 대응한 많은 교수들의 노고는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 둘째, 교수 학생 간, 학생 상호간의 교류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긴급함과 어쩔수 없는 상황임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존 오프라인 대비하여 교수와 학생 간, 또는 학생과 학생 간의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사라져 버렸고, 한학기 내내 메워지지 못하여 발생하는 빈 영역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 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컨택이 없어져서 온라인으로 행해야 하는 학교 생활이 무기력해지고 만 것이다. 학생들은 갑자기 주어진 잉여시간에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와 학과 교수님을 만나면서 사회를 이해하게 되고 캠퍼스 내 주변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영향받고 따라간다. 또한 조언을 구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도 없고 교수님과의 면담을 자연스럽게 하기 어려워졌다. 학교 내부에서 선후배, 동료의 추천으로 다양한 컨퍼런스, 강연 및 회의 참석 등도 없고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이 현저히 줄어 들었다. 게다가 학회 및 동아리 홍보도 실제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없는 상황이다.
셋째, 시험 부정행위를 막고자 하는 대안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하게 하였다. 시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하여 과도한 형식의 시험이 등장하였다. 예를 들면 100문제 이상을 20분만에 풀어내게 하거나, 특정 장소를 지정하여 시험을 보게 한다. 하지만 인터넷 접속이 끊기면 시험이 종료되는 것으로 처리하는 등 시험을 실시하는 본질보다는 차별성을 부여하거나 시험 환경을 통제하기 위하여 지나친 형식을 적용한 사례들이 있었다. 게다가 시험을 대체하기 위한 과제의 양 또한 과도하여 본질을 흐렸고, 드물게 가족관계를 그려서 제출하라는 등 고등학교 수준의 과제도 등장했다고 한다.
위 상황을 들여다 보면 단순히 등록금 환불 등과 같은 교육부의 정책이 곧 다가올 가을학기 강의 품질을 높여 줄 수 없고, 오프라인 캠퍼스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비교과 활동들을 갑자기 가능하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은 언젠가 이러한 상황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한 흔적은 각 대학이 제출한 중장기 발전계획과 대학의 비젼을 통하여 찾아볼 수 있다. 대학은 이미 위기를 인식하여 왔고 오늘날 전통적 방식의 교육 영역은 대학의 기능 중에 일부이며,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요구와 기대에 충족하기 위하여 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러한 노력을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대학의 플랫폼화이다. 미래의 대학은 모든 학생이 어떤 교류도 가능한 소통의 플랫폼, 원하는 교육과정을 디자인하고 체험하며 실시간으로 데이터와 정보를 분석하여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분석 플랫폼, 관심 분야가 같거나 이질적인 문화와 스스럼없이 만나서 교류하고 반응하는 경험 플랫폼, 전 세계의 연구 지식과 사유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글로벌 융합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이와 같이 위치하면 우리 학생들이 대학 이후의 사회에 대한 기초 역량과 글로벌로 향한 꿈을 펼치는데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 정보시스템 인프라스트럭처이다. 세계 최상위 대학들은 대부분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학생들과 원격에서 모바일 장치로 상호작용하며 소통하고, 연구자들은 다중 협업을 이어가는데 최첨단의 클라우드 인프라와 협업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교과설계, 연구업적 관리 및 대학생활 서비스를 학생과 연구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혁신적인 최첨단 정보시스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정보시스템을 살펴보면 여전히 90년대 장부 전산화에 머무르고 있다. 주기적으로 차세대 정보시스템을 구축하였지만 턱없이 부족한 재원으로 인하여 근본적인 구조와 프로세스는 혁신 없이 여전히 과거 규정과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
정보시스템 구축은 철학이 필요하다. 기존 제도와 규정에서 정한 서식을 데이터베이스로 전환하고 해당 절차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정도의 정보화는 전염병 사태는 물론이고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는 대학의 비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전세계에서 모인 인재들이 오프라인에 버금가는 컨택이 이루어지면서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고, 서로 팀이 형성되고 교류가 가능할 수 있어야 하며, 구체적인 협업을 하는데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자원이 할당되고 최적화할 수 있도록 지원되어야 한다. 축적된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온라인에서 용의해야 하며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교육 효과를 높이고, 연구 결과를 집적해서 공간과 거리에 대한 기회 비용을 단축해야 한다.
이러한 대학 고유의 비젼과 철학이 뒷받침된 정보시스템의 구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학은 기존 오프라인 대학의 기능을 대신할 많은 신개념 아카데미와 지식 데이터베이스가 대체해 나갈 것이다.
대학은 분명히 위기이다. 고등교육법의 틀 안에서 제한된 혁신을 추구하며 고군분투해 온 것도 사실이며,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 전염병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후순위로 미루어 놓았던 근원적인 고민을 이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고등교육법 체계 내에서의 등록금 등 대학 재원 조달 및 교육세에 기반한 재정지원 정책과 미래 우리 대학이 어떠한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며 솔직한 토론이 가을학기 이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등록금 환불과 같은 창피하기 그지 없는 키워드가 언론에 등장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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