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DT현장] 진옥동 신한은행장의 고객가치](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0602102269065001[1].jpg "[DT현장] 진옥동 신한은행장의 고객가치")
신한은행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은행장이 되고 나서 으레 그렇듯 고객을 동원하는 줄로 알았다고 한다. 지금은 고객가치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박힌 표현이 됐을 정도다. 기자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진 행장의 고객가치는 원론적이고 상징적인 언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은행이라는 영업조직의 수장이 눈 앞의 실적을 포기한 채 고객가치만 외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진 행장의 진정성이 느껴지고 있다. 고객가치는 빈말이 아니었다. 고객가치는 실적을 포기하더라도 무조건 지켜야 하는 절대가치였다. 신한은행이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이 단적인 사례다. 올 들어 신한은행이 펀드판매로 벌어들인 수수료수입은 약 433억원으로 1년 전 550억원보다 21%나 줄었다. 계속 늘기만 하던 사모펀드 판매잔고도 올해 들어서는 1조원 이상 감소했다. 사모펀드 계좌 숫자도 올해 들어서는 계속 줄고 있다. 리딩뱅크, 1등 전략을 중시하는 신한은행에서 실적 감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숫자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은행원에게 펀드 판매는 고역이다. 예적금과 대출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은행원에게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펀드상품을 설명하고 점포별로 판매하라는 건 애초부터 잘못될 결정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성과보수가 따라붙고 수익구조가 복잡한 사모펀드를 다수 점포에서 팔라고 하니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KPI에 펀드판매에 따르는 비이자수익 목표가 있으니 은행원 입장에선 팔지 않을 수 없다. 면전에선 고객가치를 말하지만, 직장인으로서 목표달성을 위해선 무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은행원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 행장은 수수료수입이 줄어도 좋으니 고객을 위한 선택을 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투자상품 판매정지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봤다. 은행에서 직접 주가연계신탁(ELT)이나 주가연계펀드(ELF) 판매 과정을 점검하고, 그 결과 고객 보호가 미진한 7개 영업점에 대해 한달 간 투자상품 판매를 정지시켰다.
'투자상품 판매 정지'는 고객 보호를 위해 올해 1월 신한은행이 시중은행 중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제도다. 고객의 투자성향과 투자경험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금융투자 상품을 적절히 권유하라는 취지다. 은행 이익만을 위해 마구잡이로 신탁이나 투자신탁 상품을 팔지 말라는 강제 조치다.
진 행장은 투자상품 판매 정지 제도와 함께 올해 초 '같이 성장(Value up together) 평가제도'라는 새로운 영업점 평가체계를 도입했다. 수수료수입이라는 목표달성률만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방식에서 고객 관점에서 성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했다. 목표달성이라는 정량평가만 하게 되면 자연스레 판매수수료나 보수율이 높은 펀드를 팔기 마련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행성과 평가방식을 끌어들였다. 고객 입장에서 적합한 상품을 선택했는지, 판매과정에서 적절하지 않은 상품을 권유하지는 않았는지 등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을 평가하도록 했다.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나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같은 투자상품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1년 전 경영전략회의에서 고객 기반 KPI를 외쳤던 진 행장은 올해 경영전략회의에서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성과는 과정의 정당성에 의해 이뤄지고, 정당성은 결국 성과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든다"고 했다. 실적이라는 성과와 함께 성과 달성 과정이 정당해야만 고객 중심의 가치가 실현된다는 뜻이다.
진 행장의 '고객 중심·고객 퍼스트'가 일회성 발언에 불과했다면 영업점 성과평가 체계 개편이나 투자상품 판매 정지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성과가 부진한 시점에서조차 '진정한 성과는 과정의 정당성에 의해 완성된다'는 말은 진정성을 더한다. 실적부진의 책임은 자신이 짊어질테니, 성과의 질을 높이자는 대목에서는 진 행장의 자신감도 엿보인다. 진 행장이 성과목표와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를 바란다. 그리고 뜨겁게 응원한다.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citizenk@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