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상생` 알아서 잘 할게요"](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2002102269781001[1].jpg "[DT현장] \"`상생` 알아서 잘 할게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최근 6일 동안 신규 확진자가 1288명이나 나왔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인 만큼 당연히 동의해줬다. 이런 난리통에서도 기업들의 '상생'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삼성전자는 19일 '우수기술 설명회'를 열고 중소 협력사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유한 8000여건의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물론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온라인 화상 회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행사 하나쯤은 얼마든지 미루거나 유야무야 넘어가도 지적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행사를 굳이 이 같은 시기에 강행하는 것은 총수의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와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작년 12월 회사 창립 50주년 인사말에서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동행'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중소기업 스마트 구축 지원 사업을 비롯해 상반기 최대 인센티브 지급, 벤처기업 육성 등 다양한 상생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대기업들의 바뀐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약간의 금전을 포함해 '보여주기 식' 상생 행사가 많았다면, 지금은 대기업이 해당 중소 협력사 당사자들보다 더 경쟁력을 끌어올려주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지난해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 그리고 올 초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벨류체인 마비 등으로 산업 '생태계'에 대한 중요성을 대기업들이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육성 중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대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대기업의 상생 활동에는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필요성을 느끼니 굳이 정부가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의 힘이다.
문제는 오히려 정부가 모처럼 알아서 잘 하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은 최근 소위 '경제민주화법'이라는 반기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가운데는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에게 일정 비율의 이익을 공유하는 것을 의무화 하는 등의 반시장 법안이 다수 들어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개입하고 있는 것은 물론, 기업 경영권에 대한 간섭과 침해를 초래하는 많은 법을 쏟아내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를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 전속고발제 폐지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해고·실직자의 노조 가입을 가능케 하는 노조법 개정안 등을 입법예고하고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이는 기업의 크기와 관계 없이 모두 동일하다. 시장경제논리에서 기업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원봉사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간혹 일부 기업의 사회적 가치(CSR) 창출 활동은 사업적 연관성이 전혀 없어보일 지 모르지만, 적어도 기업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이익을 얻을 수 있기에 시장논리에 부합한다.
하지만 상생을 강요하거나 재산권 등 권리를 억압할 경우 이는 시장논리에 반한다. 특히 대기업·제조업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상생 압박으로 대기업의 활동이 위축될 경우 중소기업으로 가는 '낙수효과'도 줄어든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법이 오히려 중소기업의 밥그릇을 뺏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시장논리는 둘째 치더라도,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방으로 들어가는 학생에게 부모가 "빨리 공부 안해"라고 잔소리를 하면, 그 결과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정말 자녀가 공부를 더 잘하기를 바란다면 공부한 시간 만큼 용돈을 올려주는 것이 더 낫다. 혹여라도 그 돈이 아깝다면 적어도 공부하겠다는 자녀의 기를 굳이 꺾지 말고 지켜만 봐 주는 것도 방법이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이제기업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때 고도 성장기에는 일부 부당한 행위도 했을 지 모르지만, 요즘 대기업들은 정말 믿을 만한 협력사를 원하기에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할 판이다.
대기업들이 잘 '상생'하면 지켜봐주고 응원하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가 정말 정부여당의 말처럼 엄중하다면 '대기업은 악(惡)이고 중소기업은 선(善)'이라는 녹슨 편가르기 프레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알 것이다. 만약이라도 대기업들이 다시 꼼수를 쓰기 시작한다면 그때 가차없는 철퇴를 내려도 늦지 않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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