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식 외교안보평론가
![[포럼] 민주독재를 경계하자](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2402102369660001[1].jpg "[포럼] 민주독재를 경계하자")
북한과 같은 세습독재체제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이 공식적 정치체제를 떠나 실질적으로 독재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전체주의적 이념과 생활방식에 익숙한 옛 공산권에서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가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다. 헌법과 법률을 공공연하게 고치거나 부정선거를 통해 권력 집중을 제도적으로 항구화하고 있다.
민주와 독재는 양립할 수 없는 상호모순적 개념이 아니다. 현대 정치학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미국의 정치학자 라스웰 교수는 권력의 소재와 그 행사방법을 구분한다. 권력 행사의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말하지만, 민주는 본질적으로 '주권재민'으로 곧 권력의 소재에 따른 분류이다. 단독자의 지배는 '전제'(autocracy)다. '독재'(dictatorship)는 권력의 집중에 의한 지배이며, '공화'는 권력이 분산되고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진 지배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민주공화제, 군주공화제(입헌군주), 전제군주제, 민주독재제 등 크게 4가지의 분류가 가능하다. 민주독재는 다수의 독재다. 다수의 강제와 소수에 대한 억압이며 '민의'를 대변한다는 외피를 쓴다. 국민의 뜻은 법치보다 상위개념이라며 언론 장악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선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은 민주독재와 함께 다수독재의 전형적 사례다. 그러나 민주독재는 적어도 독재가 아닌 듯 부정하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는 독재를 미화하고 공식화한다. 유능한 엘리트들이 무지몽매한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는 '전위당'(vanguard party) 이론과 당이 결정하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 이론은 레닌 조직이론의 핵심이다.
자본주의는 반드시 붕괴하지만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국민에게 선지적 공산주의자들이 계몽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혁명의 진보성과 지도성'이다. 당의 결정은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기에 올바른 것이며 소수는 다수의 결정에 복종하고 행동을 통일해야 한다는 '무오류의 정당성과 강제성'이다. 그래서 혁명 중추가 일반 대중을 보살피며 지도하고 독재하는 것은 필연적인 길이며, 동시에 혁명을 방해하는 적들의 공세에 대응하여 혁명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불법적 폭력적 수단도 정당하다고 믿는다.
민주주의는 대의정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의정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으로 훼손되고, 법치주의도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모든 상황을 규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독재권력에 의해 쉽게 위협받을 수 있다.
혹자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사회와 국가에서 독재는 더 이상 불가능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고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비판한다. 그러나 민주와 독재는 함께 할 수 있다. 후진국 현상인 것만도 아니다. 오늘날 정보화와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거대한 사회 속에서 개인은 더욱 무기력해지고 소외가 진행된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속에 판단의 기준조차 잃기 쉽다.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된다.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우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최적의 온상이다. 여기에 전위당과 민주집중제 이론으로 무장한 이상주의자들이 득세하고 평등과 평화의 이상세계를 선전한다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사이비종교에 의지하듯 맹목적으로 따르기 쉽다. 그리하면 아무리 최첨단 선진민주주의 사회라도 독재를 피할 길이 없다.
어수선한 난세에 한치 앞 자기 한몸 돌보기도 힘든데, 고개 들어 전체를 넓게 살피고 미래를 멀리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흥망성쇠도 결국 국민의 책임이다. 그 어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 적어도 민주를 가장한 독재는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경계심을 잃지 말자.
강원식 외교안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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