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DT현장] 멈춰선 부처 협업시스템](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2702102269731001[1].jpg "[DT현장] 멈춰선 부처 협업시스템")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코로나19 치료제·백신 후보물질 개발을 담당하는 한 연구자는 이 같이 말한 뒤,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다시 한 번 정부부처 간 유기적 협업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 연구자는 코로나19 연구 과정에서 기존에 발표된 논문에 비해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얻어 관련 내용을 실은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사이언스에 투고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돌아온 건 '리젝트(거부)'였다.
해당 저널에 문의하니 "한 달 전에 네덜란드 연구팀이 우리와 같은 내용의 연구논문을 먼저 투고해 게재가 어렵게 됐다"는 답변을 들었다. 순간, 상실감과 허탈함에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질본으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체를 조금만 더 빨리 받았더라면, 우리의 연구성과를 세계 최고의 국제 학술지에 가장 먼저 게재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진한 아쉬움 속에 연구실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온 때는 지난 1월 20일. 이 때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체를 받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질본에 문의했으나 확답을 받지 못했고 실제 검체를 받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이에 반해 보건복지부 소속 국립병원과 국립보건연구원 등은 검체를 먼저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지난 2월 말이 돼서야 뒤늦게 받을 수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보건복지부에 검체 확보 요청을 하지 않았다.
검체 확보까지 근 한 달 동안 어떤 연구도 하지 못하고, 질본으로부터 검체 받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반면, 미국은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3일 만에 검체 분양을 시작해 자국 연구자들에게 재빠르게 지원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다른 나라에 비해 한 달 늦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시간과의 싸움인 연구 특성상 우리나라가 연구를 주도할 수 없었고, 의미있는 연구성과도 내기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한참 부족했다.
일선 연구자들은 이런 상황이 벌어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상위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간 부처 소통과 협업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칸막이 부처', '부처 이기주의' 등으로 불리는 부처 간 불통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나타난 셈이다. 정부는 말로는 '부처 협업'을 외치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국가·사회적 현안과 이슈 대응을 위한 부처 협업 시스템은 'On'이 아닌 'Off'가 돼 버리기 일쑤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부처 협업 시스템의 현 주소이자, 고질적 병폐다. 부처간 소통 부족은 무사안일, 복지부동을 넘어 부처이기주의로 변질돼 '내 부처가 우선이고 타 부처가 먼저 하면 안 된다'는 의식으로 뿌리깊게 박혀버린 상태다.
과기정통부와 보건복지부 간 이런 '부처 협업 오프' 상태는 지금도 여전하다.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국가 차원의 감염병 대응력 강화를 위해 '국가감염병연구소'와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는데, 두 부처가 따로 따로 추진하고 있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감염병 분야 기초 연구는 과기정통부 소속의 '국가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담당하고, 감염병 관련치료제·백신 개발, 임상 등 응용 연구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국가감염병연구소'가 각각 맡기로 한 것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두 부처의 '나눠먹기식 발상'이 표면화된 결과라고 힐난한다. 칼로 무를 자르듯 감염병 연구를 기초와 응용 분야로 나눠 각각의 연구기관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발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어디부터 기초연구이고, 어디까지 응용연구인지 어떤 기준으로 나눠 연구를 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불만 표출인 것이다.
역대 가장 긴 장마와 기록적인 집중 호우로 전국이 큰 재해를 입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부의 방역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 세계로부터 호평받은 'K-방역'의 저력을 다시금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꺼져버린 '부처 협업 시스템'의 스위치를 켜는 일이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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