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DT현장] 우격다짐 `주52시간` 연구](http://contents.dt.co.kr/images/202012/2020120802102269731001[1].jpg "[DT현장] 우격다짐 `주52시간` 연구")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시행 1년 5개월이 된 '주52시간 근로제'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정부의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출연연은 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 근로제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일단, 연구현장에선 주52시간 근로제가 정착돼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애초 몸에 맞지 않은 '주52시간'이라는 옷을 정부의 강요에 의해 1년 동안(주52시간 유예기간) 이리저리 수선해서 간신히 입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아 겉으론 그럴싸한 옷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대다수 연구자들은 억지로 만들어 놓은 '주52시간 옷'을 아직까지 불편해 하고 어색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25개 출연연을 총괄 지원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노무법인에 의뢰해 분석한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보직자와 연구책임자 등을 중심으로 주52시간이 연구환경과 연구성과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연구현장에선 주52시간 시행에 따른 근로시간 제한과 업무시간 차이 등으로 인해 연구행정, 실험보조 등 연구지원 인력의 도움을 제때 받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실험이 지연되거나 연구가 늦어져 일정을 재조정해야 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는 등 연구에 상당한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보고서나 논문 작성 등 연구 이외 업무 수행에 시간적으로 쫓겨 자발적 초과 근로를 하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근로시간 감축을 위해 도입된 주52시간 근로제가 반대로 연구자의 연구를 제약하는 새로운 규제로 등장해 연구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연구 책임자들은 본업인 연구에 집중하기 보다는 동료 연구자들의 근로시간 관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제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이번 정부가 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입한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근로시간을 줄여 남은 잉여 시간에 일할 사람을 뽑아 일자리를 늘리고 휴식시간을 늘려 일의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주52시간근로제 정책의 근본 취지다. 이는 장시간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생산성이 낮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적용할 때 정책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출연연과 같은 R&D(연구개발) 현장은 장시간 근로에 노출돼 있지 않을 뿐더러, R&D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생산성이 낮다고 판단하기 쉽지 않고, 근로조건도 타업종에 비해 나쁘지 않다. 출연연은 주52시간 근로제 도입 이전부터 근로시간 한도를 정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연구를 수행해 온 조직이다. 더욱이 연구개발업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야 할 때가 많고, 연구 이외 업무들이 혼재돼 있어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 근로 방식이 전혀 다른 업종이다.
이 때문에 연구현장에선 굳이 "주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사업장 규모를 기준으로 단계별 도입을 강행했다. 주52시간근로제는 연구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노동 수요와 공급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공감대 형성을 통해 추진해야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다.
과거처럼 획일·경직된 중앙 통제식 규제 형태로는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시대다. 중소업계를 포함한 산업계에서 주52시간 도입을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억지로 맞춰 입은 옷은 얼마 안 가 또 다시 수선해야 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누더기 옷이 돼 결국 입지 못해 버려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주52시간근로제가 연구현장에 시행된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지금부터라도 보다 면밀한 제도 보완과 개선을 통해 현장에 딱 맞는 '맞춤옷'으로 주52시간 근로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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