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승헌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보보호연구본부 책임연구원
![[기고] 공인인증서 폐지, 기회의 창 열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12/2020121602102369660001[1].jpg "[기고] 공인인증서 폐지, 기회의 창 열었다")
'공인'의 사전 뜻을 찾아보면 국가나 공공 단체 또는 사회단체 등이 어느 행위나 물건에 대하여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분야나 공인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든 환경에서 사전에 지정한 공인만 이용하도록 영구적으로 제한한다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혁신은 시도되지 못할 것이다. 초기에 환경이 척박했을 때는, 누군가 기준을 잡고 끌어줘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 환경이 발전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이 확보된 이후에도 공인된 것만을 고집한다면 보호가 아니라 간섭이 될 수도 있다. 사전에 제한적으로 지정한 '공인'보다는 각각의 서비스 영역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공인'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90년 대 말은 인터넷 기반의 금융거래와 전자상거래 등의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대면 환경이 인터넷 기반의 비대면 환경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시기였다. 이때 가장 주목된 부분이 비대면 환경에서 거래 내용을 보호하고 거래하는 상대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공인인증서다. 비대면 환경에서 상대방을 확인할 수 있고 계약 문서의 위·변조도 검증할 수 있으면서 법적으로 보장되는 수단이 생긴 것이니,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공인인증서는 행정, 금융, 쇼핑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용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제적인 액티브엑스(Active-X)의 설치에 따른 불편함과 보안성의 문제점들이 대두되었다.
특히 2014년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천송이가 입었던 '천송이 코트'를 중국인들이 해외 직구 하려고 했으나 공인인증서 설치 요구로 인해 구매할 수 없다고 지적되면서 공인인증서 의무사용규정 폐지, 액티브엑스가 필요 없는 인증서 사용 등에 대한 변화요구가 커지게 되었다. 이후 공인전자서명제도 폐지정책이 발표(2018년 1월)되었고, 다양하고 편리한 민간 전자서명이 개발 및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이번 전자서명법 개정으로 전자서명 제도 및 시장이 개선되어 국민들의 전자서명 이용 편의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된 전자서명법의 주요 취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인인증서 제도 폐지를 통한 다양한 전자서명 수단 이용의 활성화이다. 기존에는 공인전자서명에 우월한 법적 효력을 부여하였으나 전자서명의 법적 효력을 하나로 일원화하여 모든 전자서명에 동등한 법적 효력을 부여하였다. 둘째, 신뢰성 및 안전성 있는 전자서명 수단 제공을 위한 평가인정제의 도입이다. 전자서명인증사업자의 전자서명인증업무 준수 여부를 민간 평가기관을 통해 평가해 이용자가 적정 전자서명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셋째, 이용자 보호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고 제도변경에 따른 이용자 불편을 방지하는 것이다. 기존 가입자 보호 및 손해 배상책임에 대한 근거 규정은 유지하고 기존의 공인인증서는 법 시행 이후에도 여러 인증수단 중의 하나로서 사용 가능하도록 하여 기존 사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한 것이다.
현재 인증서비스 관련 민간 기업들은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준비 중에 있다. 국내 주요 모바일 메신저 업체는 공인인증서와 동일한 공개키(PKI) 기반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인증서 사용 내역이나 인증서 원본의 위·변조를 방지하고 있다. 사용자는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메신저를 통해 간편한 인증이 필요할 때나 제휴기관 서비스에 로그인할 때 6자리 간편비밀번호나 지문·얼굴인식 등 바이오정보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동통신사 연합은 실시간으로 USIM(가입자식별모듈)을 검증해 분실신고 및 해지신고 전화번호를 걸러내고 있으며, 화이트박스 암호 솔루션을 적용해 개인키를 스마트폰 내 안전한 저장공간에 보관함으로써 해킹을 차단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민간에서 발급한 인증서를 통하여 내년 1월부터 홈택스 연말정산간소화, 정부24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분야 전자서명 확대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공인인증서는 은행, 증권사 등 기관에 방문해서 발급받아 PC나 USB 등에 일일이 복사하고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민간 인증 서비스는 이러한 번거로움 없이 웹이나 모바일 앱에서 바이오 인증이나 OR코트 등의 다양한 신기술을 통하여 간편하게 인증서를 발급할 수 있을 뿐더러 유효기간도 서비스에 따라 2~3년 또는 무제한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는 다양하고 편리한 전자서명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액티브엑스(ActiveX)나 실행파일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전자서명 가입자 신원확인도 기존 대면확인만 허용했던 방식에서 사전에 안전성이 검증된 비대면 확인도 가능해지고, 가입자 인증도 10자리 이상의 복잡한 비밀번호 대신 바이오 정보나 간편비밀번호 등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정부의 공인인증서 폐지 정책이 발표된 후 민간과 공공영역에서는 공인인증서 이외에 바이오, 블록체인, 클라우드, 분산 ID 등 기반의 다양한 전자서명 신기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내 전자서명 서비스는 20여년 만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21년 전 정부 주도의 공급자 중심 인증에서 민간주도의 수요자 중심 인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동안의 공인인증서를 통해 인증서비스에 대한 공급자와 수요자로서 축적된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전자서명 인증서비스의 편리함과 안전함에 대한 나름의 기준(안목)을 갖게 된 것이다.
이번 전자서명법 개정을 통해 규제 개선 및 공정한 경쟁을 하는 시장 환경 조성으로 다양한 전자서명 기술 및 서비스가 경쟁하여 혁신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전자서명인증서비스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하며 관련 산업체의 경쟁력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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