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선스 취득하듯 새도전… 美 유학 당시 다분야 연구 큰 도움
안정적 연구비 확보 등 난항 속 화학연 중심 '원팀' 상용화 이끌어
30%대 고효율·활용범위 등 잠재성 커… 글로벌 경쟁력 구축 기대
안정적 연구비 확보 등 난항 속 화학연 중심 '원팀' 상용화 이끌어
30%대 고효율·활용범위 등 잠재성 커… 글로벌 경쟁력 구축 기대
![[이준기의 D사이언스] 집념으로 일군 고효율 태양전지… "혁신기술로 中추격 따돌렸죠"](http://contents.dt.co.kr/images/202103/2021031702100531731001[1].jpg "[이준기의 D사이언스] 집념으로 일군 고효율 태양전지… \"혁신기술로 中추격 따돌렸죠\"")
이준기의 D사이언스
서장원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진중하고 묵직했다. 그래서였을까.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념이 말 속에 오롯이 담겨 전달돼 연신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 표지 논문을 장식한 서장원 한국화학연구원 박사의 얘기다.
네어처는 과학계에서 사이언스(Science), 셀(Cell) 등과 함께 '세계 3대 학술지'로 꼽힌다.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이자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서 박사는 지난달 25일 네이처 표지논문을 장식했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 중 과학적 가치와 기술·산업적 혁신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네이처 표지논문 주인공이 된 과학자는 노벨화학상 유력 후보로 꼽힌 현택환 IBS(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 연구단장 딱 한 명 뿐이었다.
서 박사는 2년 전에도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한 데 이어, 이번에 표지논문까지 연타석 홈런을 쳤다. 40대 중반을 조금 넘긴 그는 이전부터 촉망받는 과학자로 명성을 쌓았다. 그가 이끌고 있는 화학연 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차세대 태양전지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서 박사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상용화에 근접하는 고효율·대면적 핵심·원천기술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미국 신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서 발표하는 세계 최고 효율 기록을 3번이나 갈아 치웠다.
2009년 3.8% 효율에 그쳤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효율을 최근 상용 실리콘 태양전지 효율(26.7%)에 버금가는 25.2%까지 끌어 올린 장본인으로,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서 박사는 "최근 몇 년 간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중국 과학원(CAS) 연구팀으로, 고효율 연구에 있어 자존심을 건 경쟁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앞으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고효율화 기술을 활용해 효율 높은 가벼운 태양전지를 개발해 모바일 기기나 전기자동차, 건물 외벽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상용화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새로운 도전'이 미래 연구의 자양분이 되다= 서 박사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로 진학하면서 과학자로서 꿈을 확고히 했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유기전자재료 분야를 연구했다. 당시 OLED(유기발광소자)에 대한 연구를 막 시작한 무렵으로, 그는 OLED에 필요한 유기 정공수송층 소재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 태양전지에 쓰이는 소재 관련 연구를 석사 시절에 시작한 것으로, 그 때의 연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태양전지와 인연을 소개했다.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해서는 유기광전자 소자에 응용되는 소재 등을 집중 연구했다. 이와 관련한 연구성과를 세계적 학술지인 미국화학회지(JACS)에 제1저자로 쓴 첫 번째 논문을 통해 연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고, 과학자로 공식 데뷔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서 박사의 설명이다.
이후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버팔로뉴욕주립대에서 박사후연구원(포스닥)을 시작하면서 박사 때 해 오던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에 몰입했다. 서 박사는 "박사 때 하던 연구를 이어가는 것과 완전히 다른 분야의 연구를 하는 것 중 두 가지 선택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지도교수님이 '박사는 새로운 연구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라이선스와 같은 것이다'는 말씀을 떠올리며, 새로운 연구에 도전해 보기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박사후연구원 시절 내내 무기 나노입자 합성과 양자점을 이용한 태양전지 연구를 더 깊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도 세계적인 태양전지 분야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돼 줬다. 서 박사는 "석·박사 때 유기고분자 소재, 박사후연구원 때 무기화합물 분야 등 서로 다른 연구를 한 덕분에 지금하고 있는 유·무기 하이브리드 화합물 기반의 페로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집념으로 일군 고효율 태양전지… "혁신기술로 中추격 따돌렸죠"](http://contents.dt.co.kr/images/202103/2021031702100531731001[2].jpg "[이준기의 D사이언스] 집념으로 일군 고효율 태양전지… \"혁신기술로 中추격 따돌렸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와 첫 인연을 맺다= 서 박사는 5년 동안의 미국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연구교수를 거쳐 2013년 한국화학연구원에 들어와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에 본격 뛰어 들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부도체, 반도체, 도체의 성질과 초전도 현상의 특별한 구조의 물질로, 발견자인 러시아 과학자 페로브스키를 기념해 이름이 붙여졌다. 실리콘 태양전지에 비해 저렴한 화학소재를 저온에서 용액공정으로 손쉽게 제조할 수 있어 차세대 태양전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당시 10% 수준에 그쳤던 효율을 끌어 올리기 위한 연구에 집중했다. 서 박사는 "유기와 무기화합물 분야를 모두 공부한 덕분에 유·무기 화합물인 페로브스카이트 연구에 유리했다"고 밝혔다.
당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광전변환효율(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비율)이 실리콘 태양전지에 비해 턱없이 낮고, 대면적화가 쉽지 않아 상용화 될 수 있을 지 불확실하던 때였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2009년 일본 미야사카 교수 연구팀이 처음으로 개발한 것으로, 당시 효율은 3.8%에 그쳤다. 저가·유연·경량성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워낙 효율이 낮고,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해 다른 태양전지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페로브스카이트 소재의 가능성을 본 국내 연구진들의 관심이 이어졌고, 단기간 내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효율이 20%까지 향상됐다. 국내에서는 2012년 화학연을 중심으로 고효율을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서 박사의 선배 연구자를 중심으로 '원 팀'이 돼 발군의 실력으로 이 분야를 리딩하는 선도 연구그룹으로 우뚝 섰다.
◇상용화 위한 연구 집념이 어려움 극복의 열쇠= 서 박사의 연구 인생에서 결코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상용화의 최대 난관인 고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한참이던 때, 결단이 필요한 때가 찾아왔다. 단위소자 보다는 대면적화 연구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안정적 연구비를 확보해야만 했다. 줄곧 단위소자 고효율 연구에만 집중해 온 서 박사 입장에서 과제책임자라는 자리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산업체에서 우리 연구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대면적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였는데, 경험이 미천한 제가 과제책임자를 맡아 향후 연구방향을 정해 연구과제를 기획·수주해야 했다"면서 "큰 부담이었지만 우리가 연구해 온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상용화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고 말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서 박사를 중심으로 연구팀은 더욱 똘똘 뭉쳤고, 드디어 큰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국가 연구과제를 수주해 고효율·대면적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모듈 개발에 성공해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고, 이어 과학기술포장, 차세대 과학자상 등을 연이어 수상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중국과학원(CAS)이 서 박사팀이 기록한 당시 최고 효율 22.7%를 1년 만에 23.7%까지 향상시켜 1위 자리를 빼앗기는 쓰라린 아픔을 겪어야 했다. 서 박사와 연구진은 다시 심기일전의 자세로 연구에 임해 이듬해인 2019년에는 또 다시 새로운 기록과 성과를 통해 중국에 앙갚음 하며 구겨진 자존심을 세웠다. 특히 같은 해에 페로브스카이트의 고효율·고안정성·대면적 모듈화가 가능해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신개념의 페로브스카이트 박막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아 '네이처'에 실리는 겹경사를 맞았다. 그는 "우리가 대면적 연구에 전념한 사이 중국 연구팀이 우리의 기록을 넘어선 최고 효율 인증을 받았다는 소식에 연구진 모두가 다시 1위를 탈환하자는 각오를 통해 2019년 25.2%까지 효율을 높여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면서 "결국, 지난달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네이처 표지논문에 게재되는 영광을 안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계 태양전지 강자를 위해 뛰다= 실리콘 태양전지는 여전히 중국이 강세다.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늘려 가고 있어 국내 기업이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국내 기업이 차세대 태양전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와 같은 혁신적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 최근에는 실리콘 태양전지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접목한 탠덤 태양전지의 효율이 30%에 근접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탠덤 태양전지는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태양전지를 쌓아 올려 효율을 30% 이상 높일 수 있는 신개념 태양전지다.
그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은 높은 수준의 효율을 유지하면서 가볍고 유연한 전지를 제작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고 모바일 기기나 전기차, 건물 외벽 등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서 박사는 마지막으로 "돌이켜 보면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움에 도전하는 선택을 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후배 과학자들에게 당부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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