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재미와 지혜가 담긴 우리말

입력: 2021-03-24 19:32 이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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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즐겁게

박호순 지음/도서출판비엠케이 펴냄

'한참'이란 말이 있다. "답신을 받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 말할 때 그 한참이다. 한참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 걸까. 조선시대 역참을 담당하는 역(驛)이나 정(亭)을 30리(12㎞)마다 설치해 공문서 전달이나 진상품 수송 등 통신과 물류 업무를 수행토록 했다. 이를 근거로 '한참'은 30리를 걷는데 소요되는 약 3시간 정도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를 즐겁게'는 우리말의 용어나 전래의 사건, 민속, 식물, 지명, 교훈이 어떻게 비롯됐고 어떤 배경을 갖고 전승돼왔는지 살펴본 일종의 언어 박물지이자 민속지(民俗誌)이다. 평생을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장학관으로 봉직하며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매진했던 민속연구가 저자의 연구보고서다. 책은 우리말의 어원과 역사적 근거를 밝히는 데서부터 출발해 우리 민속의 올바른 이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 역사, 우리 주변의 식물과 지명의 유래, 우리 고유의 정신과 미풍양속을 살핀다.

민들레는 4월 초 노란색이나 흰색 꽃을 피운다. 책은 왜 민들레가 지조를 비유하는데 쓰였는지 추적한다.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다. 유래를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우선 민들레 뿌리가 곧고 길게 뻗어있는 것과 관련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한 가지 일에만 올곧게 몰두하는 자세를 연상시킨다. 다음으론 우리나라 토종 민들레가 끈질기게 순수 혈통을 유지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눈에 띄는 민들레는 노란색의 서양민들레다. 흰색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토종인데, 토종 민들레는 다른 민들레와는 수분하지 않고 오직 토종 민들레와만 수분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편단심이란 수식어와 잘 맞는다는 설명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은 음식을 빨리 먹어치우는 행동을 비유할 때 쓰인다. 그 유래도 추적해보았다. 남풍인 마파람이 불 때 게가 눈을 쏜살같이 감춘다는 설정을 뒤지면,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흔한 칠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봤다. 서남해안의 너른 갯벌에서 두 눈을 재빠르게 감추는 모습을 보고 언중이 이런 말을 생각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밖에 우리가 별 의미 없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에는 재미있고 지혜로운 지식이 가득 담겨있다. 적확한 언어 사용을 통해 정확하게 정보를 소통하고 온전하게 정서를 나누는데 이르는 것도 물론이다.

이규화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