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좁은 틈에 갇혀 있는 대한민국의 외교가 미로 한발 내딛었다.
문재인 정부가 4년 간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완전히 탈피한 것으로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미국과 중국 양쪽에 한국 외교의 축이 미국으로 기울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무게 추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는 결정적 포인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과 관련해 한국이 더 강력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다행스럽게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면서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했다. 양안(중국·대만)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한미) 양국이 함께 협력해가기로 했다"고 답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양안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왔다. 중국은 외국 정부가 양안 관계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내정간섭으로 여겨 불만을 표출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대만해협'을 거론한 것 뿐 아니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미국으로 기운 추를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지점은 '쿼드(Quad)'다. 미국은 인도,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비공식 안보회의체를 운영 중이다. 미국은 한국과 베트남, 뉴질랜드 등을 더해 '반중국 전선'인 쿼드를 확대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쿼드'의 역할을 인정했다. 양 정상 공동성명에는 '한국과 미국은 또한 태평양도서국들과의 협력 강화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선언했다. 한미 양국 사이에서 '쿼드'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한국은 쿼드에 참여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쿼드의 협력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마시일 지침(사거리 최대 800km 이내) 해제도 광범위하게는 중국 견제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이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등을 개발할 수 있게 된 만큼 미국은 자국군의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할 필요없이 동맹국인 한국의 힘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문 대통령의 발언이나 공동성명에서 '대만'이 아닌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쿼드 가입을 공식화하지 않은 점 등은 중국을 완전히 등질 수 없는 한국의 입장이 녹아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홍콩의 인권침해 등 비판이 언급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측도 언론 등을 통해 지난 미일정상회담에 이어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이 언급됐다는 것만으로도 내정간섭이라는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기는 했으나 반발 수위는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인 강준영 교수는 23일 디지털타임스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완벽하게 미국으로 기울었다고는 규정할 수 없지만 분명히 과거보다 미국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틀림 없다"면서 "중국 쪽도 한국이 쿼드에 가입하거나 중국 반도체 산업의 목줄을 끊거나 하는 강경책이 나올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나 대만이 아닌 대만해협을 언급하는 수준에 그친 것을 고려해 (비판의) 수위조절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외교적 수사로 교묘하게 중국의 반발을 피해간 것"이라고 진단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중국해 관련 사항들은 우리 정부가 이미 아세안 관련 회의 등에서 합의했던 사항들"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미경·임재섭기자 the13ook@dt.co.kr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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