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변형 가능 완성셀 구현 이차전지 개발
전기차·ESS 등 중대형 적용 후속연구 주력
"사고유연성·신뢰기반 연구협력 뒷받침돼야"
전기차·ESS 등 중대형 적용 후속연구 주력
"사고유연성·신뢰기반 연구협력 뒷받침돼야"
![[이준기의 D사이언스] 안전성 높인 전고체 전지 5년만에 결실… "K-배터리 위상 높일 것"](http://contents.dt.co.kr/images/202108/2021081002100531731002[1].jpg "[이준기의 D사이언스] 안전성 높인 전고체 전지 5년만에 결실… \"K-배터리 위상 높일 것\"")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박사는 평범함과 익숙함을 거부하는 과학자다. 일상에 얽매이지 않는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유연한 사고, 그리고 식을 줄 모르는 과학적 호기심은 그가 과학자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남들이 하지 않은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 돼 주었다.
김 박사는 '엄근진' 보다는 스스로를 '날라리(?) 과학자'로 칭하며, 주말에는 연구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풍류거사'로 남길 학수고대한다.
대담=이준기 ICT 과학부 차장
◇해외 협력과 이차전지 분야서 '혁신 주도'=그는 국내 연구자 중 드물게 중동의 '석유 부국' UAE(아랍에미리트) 석유공사로부터 연구비 전액을 지원받는가 하면, 국가 세금 한 푼 안 들이고 UAE가 모두 지원하는 조건으로 '한-UAE 공동 R&D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국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해외 공동연구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김 박사는 "UAE는 산유국으로 돈은 많지만 과학기술 기반이 취약해 석유를 캐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과학기술적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이런 점에 착안해 우리가 제안한 연구과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공동연구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수요자 중심의 연구과제 기획과 오래 전부터 끈끈한 해외 연구협력을 통해 호흡을 맞춰 온 해외 연구자와 의기투합한 결과라는 게 김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최근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는 '전고체 이차전지'의 안전성을 높이면서 자유변형이 가능한 기술을 선보여 배터리 업계로부터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고체 전해질 소재 개발부터 소재 성능 향상을 위한 셀 조립과 적층기술을 확보해 하나의 완전체인 '풀 셀(Full Cell)' 방식으로 구현했다. 이와 동시에 구부리거나, 잘라도 작동하는 자유변형 특성과 공기 중에 노출시켜도 안전한 전고체 이차전지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김 박사는 "일본이 전고체 이차전지 분야에서 원천기술 확보를 통해 앞서가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지 못해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 있다"며 "용량을 더욱 늘려 전기차,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시장에서 요구하는 중대형 전고체 이차전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후속 연구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과학자의 꿈'…낯선 '슬로베니아' 유학 생활서 꽃피워=김 박사는 어릴 때부터 과학자를 꿈꿨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반 선생님을 통해 과학을 처음 접한 이후 줄곧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과학반 수업을 통해 좀 더 과학과 친해질 수 있었고, 과학반 선생님이 과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닌 그에게 실험실 키를 맡긴 뒤부터 과학은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대학에서 물리학과를 전공했고, 대학원에 들어가 고체물리를 전공하며 강유전체, 상전이 등 새로운 물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는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당시 지도교수(조성호 교수)의 추천을 받아 동유럽의 기초과학 강국인 슬로베니아에 있는 요제프 스테판 연구소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박사 취득 이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지도교수와 논의 하던 중, 당시 유고 연방에 속해 있던 낯선 국가인 슬로베니아로 추천을 받아 무작정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며 "그 곳에서 '고체 물리학의 세계적 거장'인 블린츠 교수를 만나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로서 연구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체득하고, 연구의 깊이와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고 피력했다.
◇두 스승과의 만남…진정한 '과학자 길'로 이끌어=김 박사가 박사후연구원(포스닥) 신분으로 유학을 떠나 요제프 스테판 연구소에서 만난 블린츠 교수는 지금도 그의 연구 인생에 있어 조성호 교수와 함께 평생의 스승으로 남아 있다.
그는 "두 분을 통해 연구자의 삶과 자세, 연구를 대하는 마음가짐 등 연구자가 지녀야 할 정신적 자산을 배울 수 있었다"며 "특히 요제프 스테판 연구소에서의 포스닥 생활은 내가 이전과 다른 연구자로 새롭게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돼 준 소중한 시절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블린츠 교수는 30대 초반에 미국 MIT와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고국인 슬로베니아로 돌아와 강유전체 물질과 상전이 등의 분야에서 왕성한 연구활동을 통해 독보적인 연구업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박사는 요제프 스테판 연구소에서 블린츠 교수의 지도와 영향을 받아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역량을 쌓은 다양한 나라의 연구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친분을 쌓을 수 있는 혜택을 덤으로 얻었다. 이 때 인연을 맺은 해외 연구자들과 지금까지 20년 넘게 연구 협력과 교류를 지속하고 있으며, 김 박사의 든든한 해외 협력 파트너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 박사는 포스닥 시절에 교류해 온 폭넓은 해외 연구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남들이 해 보지 못한 국제 공동 연구와 글로벌 협력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고 있다.
그는 "블린츠 교수로부터 연구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덕목은 물론 연구에 필요한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 연구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 항상 스스로 단련하는 자강 의식 등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동 사로잡은 'K-과학'의 저력 뽐내=유럽과 한국, 미국 등에서 3년 간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치면서 김 박사의 연구 역량과 해외 네트워크는 한층 탄탄해졌다. 물질 특성을 연구하는 그의 연구 영역은 2002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들어오면서 나노기술을 이용한 수소 광촉매, 에너지 저장재료, 양자컴퓨터 소재 등으로 확장됐고, 나노 소재 분야 과학자로 입지를 다지는 기회가 됐다.
그는 2015년 드디어 일을 내고 말았다. UAE(아랍에미리트) 석유공사에 제안한 국제 공동연구과제 2건을 따낸 것이다. 슬로베니아 포스닥 시절 함께 연구했던 그리스 연구자와 협업으로 과제를 수주한 것으로, UAE를 포함한 산유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석유 생산성 저해 문제를 나노기술 기반의 새로운 물질 규명을 통해 해결하는 게 연구 목표였다.
김 박사는 연구과제 수주에 그치지 않고, 국가 간 협력으로 확대하기 위해 UAE와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는 등 발로 뛰었다. 그 결과, 2019년 UAE 현지에서 양국 정부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UAE 공동 R&D 기술센터'를 개소할 수 있었다. 김 박사는 센터 설립 아이디어부터 기획, 구축에 이르기는 모든 과정을 주도하며 사실상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중동의 과학기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연구를 제안할 생각이 없었지만, 해외 연구 파트너인 동료 연구자의 권유를 통해 의기투합해 과제를 수주할 수 있었다"면서 "이후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에 시너지를 내기 위한 고민을 하던 중, UAE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우리는 연구에 필요한 장비, 인력 등 물적 인적 기반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UAE 센터' 설립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고체 이차전지' 풀 셀 완성…"자존심 잃지 말고 강해져라"=김 박사는 최근 또 하나의 일을 냈다. 차세대 배터리로 각광받고 있는 '전고체 이차전지'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을 내놓은 것이다.
전고체 이차전지는 기존 리튬이차전지에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해 폭발이나 화재 등 위험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어 미래 배터리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일본을 필두로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김 박사는 용량과 안전성을 높이면서 자유 변형이 가능한 전고체 전지를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실제 전지를 절단하거나, 전지의 외부 파우치를 열어 내부를 공기 중에 노출시켜도 안정적으로 배터리가 작동한다. 또 1㎜ 이하 두께의 얇은 전지를 구부리거나 잘라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용량도 500mAh로 현존하는 전고체 전지 중 최고 수준으로 개선했다. 그는 "소재 성능 개선을 위한 소재기술 확보부터 셀 조립기술, 파우치 형태의 풀셀 제조기술, 적층기술까지 전고체 이차전지를 완전한 셀 형태로 제작하는 모든 과정을 우리의 기술로 완성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지난 5년 간의 연구 끝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기존 전고체 이차전지 기술에서 진일보한 결과이자, 대용량·고전압 구현을 통해 고성능 전고체 이차전지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김 박사는 "용량과 성능을 더욱 높여 전기차나 ESS 등 중대형 이차전지에 모두 적용할 수 있도록 후속 연구에도 박차를 가해 'K-배터리'의 위상과 미래 기술 선점에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50대 후반을 향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연구 인생을 되돌아 보면, 후배 과학자들에게 "자존심을 잃지 말고, 스스로 강해져라"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덧붙여 "자만하지 말라", "연구 앞에 진실하고, 겸손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김 박사는 "지금의 연구는 머리가 좋은 한 사람에 의해 혼자 하는 시대가 아니다. 연구에 있어 사고의 유연성과 자유로움을 잃지 않고, 협력과 신뢰에 기반한 연구 협력이 뒷받침될 때 남들이 시도하지 못한 연구를 할 수 있고, 거기에서 성과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