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금융부장
![[DT현장] `집값 파이터` 요구받는 이주열](http://contents.dt.co.kr/images/202108/2021081002102269065001[1].jpg "[DT현장] `집값 파이터` 요구받는 이주열")
한은의 설립목적으로 금융안정이 추가된 것이 10년 전인 2011년 8월31일이다. 한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10년간 인플레이션은 거의 우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가안정 목표를 훨씬 밑도는 저물가와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중앙은행의 숙제로 거론됐다.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전 연준(Fed) 의장 사후 글로벌 중앙은행의 역할은 저물가 상황에서의 거시경제 안정으로 모아지기도 했다.
한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 금융안정에 유의한 것은 2018년 11월 금통위 한번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주열 총재가 취임한 2014년 이후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 금융안정보다 경기회복에 유의하는 흐름이었다.
그 여파로 2014년 전까지 연 5~6%대의 증가세를 보이던 가계신용은 2015년 10.9%, 2016년 11.6%까지 급증했다. 이후 주춤하던 가계신용은 2020년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50bp나 인하하자 다시금 7.9%나 늘어났다. 2014년 1085조원이던 가계신용은 올 3월말 기준 1765조원으로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이미 100%를 넘어섰다.
금융안정에 유의하는 통화정책이었다면 가계부채를 이렇게 키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늘어난 가계부채는 이제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계부채가 GDP를 추월하는 과정에서 취약차주로 분류되는 자영업자 대출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자영업자 대출은 가계대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자영업자는 금리인상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 계층으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한은에 부동산 버블 해소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최근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한은의 금리인상이 부동산 가격 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통화당국의 금리인상 이후 주택가격 조정이 큰 폭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총리나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에 앞서 이주열 총재 스스로도 금융불균형 누증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그는 연내 금리인상 방침을 공식화했고, 늦지 않은 시점에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수 차례 강조하기까지 했다.
한은은 금융불균형 누증에 따른 자산시장 과열의 직접적인 사례로 서울지역 부동산 시장을 거론했다. 금리인상의 타깃이 부동산 시장이라는 뜻이다. 한은은 그동안 저금리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는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주택 가격은 수급상황과 정부 정책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금융안정 차원에서 부동산 시장 과열을 정책 목표로 삼는 모습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집값이 잡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부동산 가격은 통화정책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적절한 공급 대책없이 금리만으로 집값을 잡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부동산 가격과 관련한 한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만은 분명하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 듯 시대가 이주열 총재에게 집값 파이터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주열 총재는 경제학 박사 출신의 석학도 아니다. 그럼에도 금통위 내에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한국은행 사원으로 시작해 총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시작해 문재인 정권까지 보수와 진보 정권에서 모두 통화정책 수장을 맡았다.
이주열 총재가 집값 파이터, 부동산 문제 해결사로 나선다면 한은의 설립목적으로 금융안정이 확실히 자리매김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주열 총재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볼커 전 연준 의장을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만든 건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그는 통화정책 목표를 연방기금금리에서 M1(협의의 통화) 증가율로 변경하는 기습적인 결정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작년부터 국내 M1 증가율은 두 자릿수에 이를 정도로 가파르다. 2002년 이후 가장 빠른 통화량 증가율이다. 자산버블 대응이 시급하다면 선제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이주열 총재의 변신을 기대한다.
김현동 금융부장 citize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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