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장
![[기고] 효소가 만드는 친환경 바이오기술](http://contents.dt.co.kr/images/202108/2021081702102369660001[1].jpg "[기고] 효소가 만드는 친환경 바이오기술")
효소는 생체가 만들어 내는 촉매로 생체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다. 생명체들은 체내 유전자 발현만으로 수천 종 효소를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유기화합물들을 합성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식물은 100만여 종의 다양한 물질을 합성할 수 있으며, 이런 마법같은 생명체의 능력이 현대 생명공학기술을 통해 친환경적인 에너지, 공업, 농축수산업, 의료 기술로 발전해 가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과학자 루이스 파스퇴르는 효모의 추출물이 일으키는 화학반응을 발견하였고, 독일 과학자 빌헬름 퀴네는 처음으로 효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20세기 X-선 결정학 및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효소는 생명의 신비를 넘어 산업적 활용을 위한 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즉 효소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입체구조 해석, 특이점 개량 및 대량 제조가 모두 가능해진 것이다. 현재, 효소의 촉매반응을 이용한 공정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2020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효소 시장은 약 66조 원이며 2027년까지 연 6%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MarketsandMarkets report, 2021). 특히 산업 분야에서 효소 사용량이 늘어나는 가운데 최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의약, 진단 등 헬스케어산업에서 진단용 효소 사용도 급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화이트바이오에서 활용되는 효소의 중요성은 합성생물학의 등장과 함께 더욱 강조된다. 합성생물학은 유전자, 단백질(효소), 세포 수준의 다차원 생물 데이터를 이용하여 필요한 세포 기능을 빠르고 정확하게 디자인·제조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혁신 기술의 등장 배경에는 게놈 해독 비용이 10년 전보다 만분의 일 이하로 감소한 것이 자리잡고 있으며, IT/AI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에 이해되지 않던 게놈 배열과 생물 기능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특정 기능의 발현 및 억제를 인공적으로 디자인한 세포를 만드는 유전체 편집기술의 발명이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정밀화학 및 의약 소재의 친환경적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화학적 합성에 따른 환경 부담 등으로 규제가 강화된 기존 산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2050년까지 전체 화학제품의 50%가 친환경 바이오기술로 생산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은 최근 항생제, 치료제, 인공 펩타이드 등에 사용되는 의약원료인 D-트레오닌을, 효소를 이용해 다른 이성질체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형태로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성질체는 마치 사람의 양손이 같은 방향으로 서로 겹쳐지지 않듯이, 같은 화학식을 공유하나 그 구조가 다른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을 의미한다. 이런 이성질체들은 화학적으로는 순수하게 합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연구진은 근해 유래 해양 미생물로부터 새로운 효소를 찾아낸 뒤, 효소구조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정밀한 입체 구조를 확보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거푸집 형태를 바꾸어 벽돌 모양을 조절하듯이, 단백질 구조의 예측-설계를 통하여 효소의 성질을 설계-제작할 수 있었다. 즉 산업적으로 유용한 물질 형태인 D형의 트레오닌만 합성할 수 있도록 효소를 개량했다. 그 결과 저가의 원료물질들을 이용해 수 시간 내에 99.9% 이상의 고순도 D-트레오닌을 성공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었고 상업화를 위한 기술이전을 완료하였다.
이러한 단백질 구조 기반의 인공 효소 개발에 바이오데이터를 고속 분석하는 AI기술이 접목되면 화이트 바이오 기술의 산업적 활용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최근 '알파고'로 잘 알려진 구글의 딥마인드는 현재까지 쌓인 단백질 구조 정보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단백질 3차원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알파폴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이용하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효소구조를 예측할 수 있으며 이는 효소의 산업적 유용성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미생물을 이용해 미량 효소활성을 초고속으로 분석하는 합성생물학 기술과 병행하면 바이오-AI 융합기술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것이다.
1990년대 이후 교토의정서, 파리기후협약 등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부터 2021년 4월 기후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대응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에 따라 저탄소-친환경 산업기술 개발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며, 이는 효소공학 기술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마침 부각되고 있는 AI, 합성생물학 등 4차산업 융합기술이 산업적으로 유용한 핵심 효소의 개발을 가속화하고, 친환경 화학기술 및 바이오산업 전반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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