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언처럼 통하는 '정치는 생물', 불확실성이 핵심
'선대위 잡음 한달' 野, 불확실성 의존 계속돼 국민 피로
與는 후보 '朴 존경' 발언·특검 등 현안마다 이중 입장
슈뢰딩거 상자 들어간 듯…유권자 관측 피해선 안 돼
'선대위 잡음 한달' 野, 불확실성 의존 계속돼 국민 피로
與는 후보 '朴 존경' 발언·특검 등 현안마다 이중 입장
슈뢰딩거 상자 들어간 듯…유권자 관측 피해선 안 돼
![[한기호의 정치박박] `슈뢰딩거의 고양이` 흉내까지 내는 정치](http://contents.dt.co.kr/images/202112/2021121002109969051001[1].jpg "[한기호의 정치박박] `슈뢰딩거의 고양이` 흉내까지 내는 정치")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정치권 안팎에서 격언처럼 쓰인다. 정치는 항상 살아 움직이듯 하고 투성이어서 어떤 일이든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 말이 쓰이는 경우는 정치인들이 스스로 내뱉은 말이나 예고한 행보를 언제든 뒤집을 수 있음을 시사할 때, 또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타협안 도출이나 이합집산에 여지를 둘 때가 대부분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치를 생물에 빗대는 핵심은 '불확실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점이어서 그런지 생물, 그중에서도 연체동물 같은 정치가 잦아지는 모양새다. 유독 불확실성에 기대어 소음을 키우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성이 짙어지고 있다. 제1야당 국민의힘에선 선거사령탑으로 누군가를 모셔와야 하는지 아닌지, 어떤 요구가 오갔는지, 협상하려 만날 건지 안 만날 건지, 심지어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까지도 날마다 말이 나왔다가 뒤집히는 모습을 노출하며 한달을 보냈다.
'원팀'을 외치며 극적인 타협을 이루는가 싶더니 두 어른이 공개석상에서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않는다거나, 한쪽이 상대편의 가치관을 문제 삼는 '뒷말'을 쏟아내는 모습도 계속됐다. 드러나는 이름은 '윤석열' 뿐인 '윤핵관(윤석열 대선후보측 핵심 관계자)'을 몇주째 유행어처럼 쓰며 정치공세를 거듭하는 이들에게서 '윤핵관은 누구'라고 지목한 사례가 하나도 없는 것도 희한하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급으로 영입된 인사 둘이 연이어 과거 발언 시비에 휩싸인 동안 선대위 지도부에선 인사권을 쥐고도 '내가 추천했다'는 사람도 없이, 직접 비호하거나 자르지도 않고 당사자들에게 불명예 자진사퇴를 유도했을 뿐이다. 30대 청년 '비니좌'가 구설에 오르는 동안 비판자를 '틀딱'내지 '구태'로 낙인 찍기 십상이던 '2030정치' 구호도 원래 없었던 것처럼 종적을 감췄다.
여당은 아예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걸 선거전략처럼 구사하고 있다. 대선후보가 정체불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3일 전북 전주에서 청년들과 '소맥 회동'을 하던 중 '이재명이란 이름을 연호하는 걸 청년들에게 원하냐'는 질문을 받고 "정치인은 지지를 먹고 산다. 소심하고 위축되고 이럴 때 누가 막 (응원)해주면 자신감이 생기고 주름이 쫙 펴진다"면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 하시다가 힘들 때 (대구) 서문시장을 갔다는 거 아닌가"라고 예를 들었다.
보수야권에 가장 공격적이던 이 후보가 탄핵당한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해 여론 일각이 술렁였다. 그런데 그는 나흘 뒤(7일) 서울대 금융경제세미나 초청 강연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며 "말이라는 건 맥락이 있다"고 했다.
뒤이은 말은 "'표 얻으려고 존경하는 척하는 것 아니냐' 하는데 전혀 아니다"였다. 아무리 봐도 화자가 청자를 문제 삼을 발언은 아니다. 그의 발언에서 존경 대상을 '박근혜'에서 '국민'으로만 바꾼 패러디물이 확산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 후보는 지난달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 강행 입장을 물리고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 상위 10% 겨냥 '국토보유세 신설' 공약 비판 여론에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한다. 증세는 국민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 것도 사실상 뒤집었다. 그는 7일 "(공약을) 철회한 일이 없다"며 "철회가 아니고 기본적 원리를 말한 것이다. 국민 주권 국가에서 대리인 동의를 얻는 것은 의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후보의 경기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택지개발 비리 의혹' 특검에 대한 대응도 희한하다. 그는 지난 6일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란 야당의 말을 윤 후보에게 되치면서 대장동 사건과 부산저축은행 수사 관련 의혹 특검을 받을지 "조속한 답변을 요청한다"고 했다.
당일 윤 후보 선대위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부산저축은행 건을 포함해 특검을 받겠다고 논평을 통해 답한 지가 벌써 어언 3주"라며 특검 수용 선언을 재압박했다. 정작 국민의힘이 9월 23일 발의한 대장동 특검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을 보유한 민주당의 반대에 적어도 3차례 전체회의 상정이 가로막혔고 빈손인 채 정기국회가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한 이 후보와 '진짜 존경하는 줄 아냐'는 이 후보, '국민이 반대하면 할 수 없다'는 공약과 '철회한 적 없는' 공약, '특검 받으라'고 말한 여당 대선후보와 '특검법 상정을 막는' 여당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불리한 쪽으로 입장이 간주되면 그렇게 해석하지 말라며 비판 여지를 차단하는 식이다.
'생물 정치'를 넘어 마치 슈뢰딩거의 사고실험 상자 안의 고양이를 롤 모델 삼은 듯하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대로면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상태가 정해지지조차 않는다는, 반생반사(半生半死)의 그 고양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유권자가 두눈 부릅 뜨고 '관측'하는 걸 이리저리 회피하거나 방해까지 하는 정치가 뉴노멀이 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사안마다 입장을 명확히 하고 평가와 책임을 지는 태도가 아쉽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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