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첫 여성, 최연소 전산학부장 맡아
캠퍼스 멘토 자처… 학생과 허물없이 소통
동문 기부캠페인 이끌고 버스킹 공연까지
"사회적 책임 다하는 구성원으로 성장하길"
캠퍼스 멘토 자처… 학생과 허물없이 소통
동문 기부캠페인 이끌고 버스킹 공연까지
"사회적 책임 다하는 구성원으로 성장하길"
![[이준기의 D사이언스] 노래하는 유쾌한 멘토… "포용할줄 아는 행복한 과학자 키워야죠"](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0802100831731002[1].jpg "[이준기의 D사이언스] 노래하는 유쾌한 멘토… \"포용할줄 아는 행복한 과학자 키워야죠\"")
KAIST 제공
류석영 KAIST 전산학부장
유쾌하고 밝았다. 그 밝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강렬했고, 옆에 있는 사람마저 그 에너지에 무장해제 된다. 타인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게 우리 사회가, 그리고 지금 시대가 지향해야 할 다양성과 포용성의 위대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류석영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부장은 허물없는 소통을 무기로 KAIST 학생, 교수, 동문 등과 함께 따뜻하고 행복한 캠퍼스를 만들어 가는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문적 수월성을 지닌 교수이자 개발자인 그는 자신의 본업인 연구과 교육에 있어서는 그 어떤 교수보다 진지했고, 진중했다. 학생들에겐 때론 누나·언니처럼 살갑고 든든한 멘토로 종횡무진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류 교수는 "'내가 남과 다르고, 우리 모두 서로 다르다'는 다름을 인식한 이후, '공부를 떠나 내가 재미있게 잘 하는 거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고민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며 "KAIST 학생들도 공부만 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원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학생들과 허물없이 소통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포용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2017년 'KAIST 포용성위원회' 설립을 주도했고, 지난해 3월부터는 여성 최초, 최연소 전산학부장을 맡아 캠퍼스 내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류 교수는 매사 학생들에게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해라. 그래야 재미있게 할 수 있고, 행복감과 성취감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수학 재미 붙여 자연스럽게 '과학자' 길 걸어=류 교수는 어릴 적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과학고와 KAIST를 나온 그의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럼 "학창 시절,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머뭇거림 없이 "수학"이라고 말한 뒤 "외우는 과목은 가장 싫어한 걸 보니, 전형적인 '이과 스타일'였나 봐요"라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재미있는 수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실력은 나날이 늘었고, 선생님은 각종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라고 권유했다. 이를 계기로 수학에 자신감이 붙었고, "내가 남들보다 수학을 잘 하는 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멋쩍어 했다. 수학을 잘 한 덕분에 당시 처음 개교하는 서울과학고 1기로 입학할 수 있었다. 과학고에서 2년 만 공부하고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KAIST 전산학부에 문을 두드려 합격할 수 있었다.
류 교수는 "KAIST는 다른 대학에 비해 자유로운 문화가 있어 학부생 때도 노래와 운동 등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며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당시 남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어 재미있게 공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매력에 빠져 美 유학길=학부 시절 프로그래밍 언어에 흠뻑 빠진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프로그래밍 실력을 더욱 키웠다. 박사 과정에서는 지금껏 가장 존경하고 있는 지도교수를 만나 컴퓨터공학 분야의 실력을 더 한층 쌓아 박사학위를 받았다.
류 교수는 "대학원 때부터 안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나의 최종 연구 목표였다"며 "박사학위를 받고,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을 통해 안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 연구소에 입사해 개발자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안전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포트리스(Fortress)'라는 차세대 언어를 개발해 프로그래밍에 익숙하지 않은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보다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이후 남편이 교수로 부임하기 위해 한국에 귀국하면서 류 교수도 미국에서 개발자의 삶을 정리하고, 2009년 모교인 KAIST 전산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지금은 웹사이트에서 대부분 사용하고 있지만, 보안에는 취약한 '자바 스크립트'를 다양한 분야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와 분석기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모교에서 후배인 제자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최고의 영광이자 기쁨이었다"면서 "지금도 아침에 출근하며 학교 정문을 지날 때면 심장이 마구마구 뛸 정도로 가슴 벅차 오르곤 한다"고 모교와 학생들에 대한 무한 애정을 뽐냈다.
◇스스럼 없이 '노래 부르고, 공연하는 교수'로 인기=류 교수는 유독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학부 시절, 단짝 친구와 함께 다니며,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로 활동했고, 교수가 된 후에도 캠퍼스에서 버스킹(거리음악 공연)도 했다. 다른 대학과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캠퍼스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한 류 교수의 '깜짝 공연'였던 셈이다. 교수가 노래를 부르자, 학생들도 하나 둘씩 캠퍼스로 나와 버스킹을 하고, 자신의 재능과 끼를 뽐내는 퍼포먼스일도 잦아졌다.
그는 "무엇을 하든지 재미가 있어야 즐길 수 있고, 그렇게 즐기다 보면 잘 할 수 있게 된다"며 "우리 학생들이 재미있는 것을 찾아 캠퍼스에서 마음껏 즐기면서 행복한 대학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표현했다.
2020년 'KAIST 방방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년 전 학생생활처장을 맡고 있던 류 교수가 가수 이한철씨의 '방방(방과 방을 잇다) 프로젝트'를 접하고, 학생들을 직접 모아 각자의 방에서 4인조 밴드의 연주에 따라 노래하는 영상을 모아 제작한 것이 'KAIST 방방 프로젝트'였다.
류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서로 만나지 못하고, 비대면으로 소통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통해 서로 위로하고, 이런 위기를 공감, 연대, 포용을 통해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방방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학생들이 행복한 대학생활을 보냈으면"…'정신적 멘토' 자처=류 교수는 학생들을 보면서 "행복한 대학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스스로를 되뇌인다. 그래서 학생과 대화할 때 교수가 아닌 학생 입장에서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제대로 된 학생 상담을 하고 싶어 심리학 공부를 할 생각도 했다. 평소에는 교내 상담사 선생님을 찾아가 자문도 많이 구하는 등 학생들의 행복한 대학생활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자, 그의 연구실에는 전산학부 학생뿐 아니라 다른 과 학생까지 찾아와 다양한 고민 보따리를 풀어 놓곤 했다. 그 때마다 류 교수는 예전 대학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고민과 어려움 등을 떠올리며 고민의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가기 위해 보다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선다.
그는 "내가 대학 시절, 모르고 지나간 것들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더 많이 만나 소통하려고 한다"며 "학생들과 소통하며 저 스스로 많이 배우고, 학교와 학생 사이의 중재자 역할도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피력했다.지난달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딛고 학사학위를 받아 세간의 화제를 모은 박혜린 학생 역시 류 교수가 학생생활처장 시절 처음 만나 함께 소통하며 깊은 사제의 유대를 맺었다. 류 교수는 휠체어를 타고 강의실을 힘겹게 찾아가 수업을 들어야 했던 박 씨의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 다녀 혜린 씨가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각종 불편사항이 정비되는 등 캠퍼스에 하나 둘 변화가 생겼다. 평소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혜린 씨는 아예 전산학부로 전공을 바꿔 학부를 졸업할 수 있었고, 대학원도 전산학부로 진학해 류 교수와의 끈끈한 사제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류 교수는 "혜린이가 전산학부로 오면서 많은 학생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과 배려, 다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지를 학습하게 됐다"며 "혜린이로 인해 주변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확산되고 있어 매우 뜻깊다"고 평가했다.
◇전산학부 동문 '기부 행렬'에 불 지펴=지난해 6월 KAIST에 전산학부 동문들의 '기부 릴레이'가 이어져 화제를 모았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을 시작으로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신승우 네오위즈 창업자, 류성중 드림모션 이사 등 국내 굴지의 IT업계를 주름잡는 CEO부터 심지어 16학번 휴학생 엔지니어까지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전산학부 동문들이 기부천사로 나선 배경에는 류 교수가 있었다. 류 교수는 91학번 동기인 장병규 의장과 의기투합해 학교와 후배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이 기부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류 교수는 "장 의장의 기부 결정 이후 보다 많은 동문들이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문들에게 학부장 취임과 함께 메일을 보내 기부 동참 의사를 권유했고, 이것이 기부의 연결고리가 돼 지난해 110억원의 발전기금을 학교에 기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류 교수의 2년 후배인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어느덧 (류 교수) 누나가 학부장이 되고, 나도 회사 대표가 되고 보니 좀 더 책임감을 갖고 기부할 수 있게 됐다"며 선뜻 기부에 동참한 일화도 있었다.류 교수는 "저는 우리 학교의 핵심 가치인 '도전, 창의, 배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른 사람과 연대, 협력, 포용하는 삶을 실천한다면 행복한 과학자가 돼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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