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선인 측이 여가부 폐지를 집권 초반부터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터라 성평등 정책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쳤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윤 당선인이 3·9 대선과정에서 약속했던 여가부 폐지를 그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전화 인터뷰에서 여가부 폐지 공약을 조정할 의사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하 의원은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남녀평등을 현 단계에서 평가해야 될 것이고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더 철저하게 실현시킬 것인지, 그 속에서 '왜 여가부가 필요 없는지' 이런 면을 가지고 국민과 깊이 있게 소통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도 최대한 설득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윤 당선인의 공식 공약집에도 담겼다. 인수위원회가 출범하면 여가부 폐지와 조직 개편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성사회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여가부 폐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상당하다.
국민의힘 대선에 참여하다 의견갈등으로 물러났던 김 전 총괄선대위원장도 여가부 폐지가 젠더 갈등을 더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총괄위원장은 1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전화 인터뷰에서 "여가부 폐지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선거를 놓고 보면 젠더갈등 문제라는 것이 표심을 완전히 양쪽으로 갈라놓았다"고 말했다. 20대 여성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20대 남성은 윤 당선인을 지지했던 현상을 짚은 것이다. 김 전 총괄위원장도 "무조건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면 그 갈등 구조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번에도 '여가부 문제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기능 조정을 통해서 그대로 유지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 얘기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의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 역시 여가부 폐지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1일 논평을 내고 "윤 당선인은 그동안 반페미니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선동하며 한국사회의 차별 구조를 더 악화했다"며 "'여가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성평등 법 제도의 후퇴를 예고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혐오와 차별이 득세하는 사회에서 여성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진지하게 헤아려야 할 것"이라며 "성평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공약은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도 "제3의 선택을 고민했던 20대 여성이 이 후보를 선택한 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하태경 의원 등이 선동해온 여성과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혐오·배제의 정치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공포와 이를 막아야겠다는 절박한 의지 때문이었다"고 입장을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전날인 10일 논평을 내고 "선거 기간 국민의힘과 윤 당선인은 혐오선동, '젠더 갈등'이라는 퇴행적이고 허구적인 프레임을 선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면서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높은 정권 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1%도 안 되는 아주 근소한 표 차로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한 민심의 의미를 잘 헤아리길 바란다"고 일침했다.
연합 측은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고, 채용·배치·승진·임금에서 차별받거나 젠더 폭력을 경험하는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차기 정부가 민주주의와 성평등 가치에 기반한 국정철학을 세우고 구조적 차별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여가부 폐지 등 공약에 대해서는 "구조적 차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할 뿐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강화하고 용인하는 위험한 정책"이라며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운동 중이던 지난 1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당선인 페이스북 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