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스, 몰도바는 마트료시카
우크라 남서부 위협하는 요지
러시아와의 자발적 합병 요구
오데사 연결시 U자 봉쇄 완성
우크라 남서부 위협하는 요지
러시아와의 자발적 합병 요구
오데사 연결시 U자 봉쇄 완성
![[이규화의 지리각각] 트란스니스트리아, 푸틴의 계륵인가 묘수인가](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1102109969660001[1].jpg "[이규화의 지리각각] 트란스니스트리아, 푸틴의 계륵인가 묘수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똘똘 뭉쳐 응전하자 러시아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 서방의 분석이다. 반면, 러시아의 주력 부대가 아직 가세하지 않은 상태로 조만간 대대적인 공세가 전개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전쟁은 보병이 적진에 승리의 깃발을 꽂음으로써 끝나므로 러시아가 최종 승리하려면 수도 키이우(키예프)로 들어가 시가전을 벌려야 한다. 280만 키이우 시민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도 수호를 위해 옥쇄(玉碎)도 불사한다는 각오인 만큼 러시아가 키이우를 점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한다고 해도 엄청난 희생이 따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정치적 리스크에 처하게 된다.
현재 러시아는 폭격기와 미사일, 야포 등으로 우크라의 주요 도시를 폭격하고 있다. 탱크와 보병이 전개되는 곳은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가 포함된 돈바스지역, 북부 벨라루스로부터 진입하는 키이우 외곽, 남부 크름반도(크림반도)에서 진격하는 방향 등 세 곳이다. 여기에 흑해에서 함포로 우크라의 제1항구 도시 오데사를 공격하고 있다. 오데사 점령을 위한 상륙작전도 전개하고 있으나 10일 현재까지 오데사를 점령하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데사는 평상시 러시아인들이 피서지로 많이 찾는 아름다운 해변도시이자 우크라 수출입의 50%를 담당하는 무역항이다. 그런 만큼 러시아는 오데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유럽의 비영리 단체 '신동유럽'(NEE, New Eastern Europe)이 러시아가 이제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남서부 접경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 공식 명칭은 프리드네스트로비안 몰다비아공화국)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구상을 할 수도 있다는 리포트를 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트료시카 같은 지역적 특색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드니스터강을 따라 북북서에서 남남동으로 길게(약 410km) 이어진 강둑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약 4100㎢로 우리나라 충청남도의 절반가량 된다. 인구 50만 명 가운데 30%는 러시아계다. 몰도바인 28%, 우크라이나인이 23%를 점하고 있다.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쓴다. 자체 통화도 갖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 구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원래 몰도바공화국의 일부였으나 독립을 선언하고 갈라져 나온 분리 공화국이다. 같은 해와 1992년 몰도바와 전쟁을 벌였다. 이때 평화유지 명분으로 파병된 러시아군 수천 명이 현재도 주둔 중이다. 러시아는 그러나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몰도바에도 러시아인이 35% 가량 살고 있고 친러시아 세력이 한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유럽 국가들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승인하지 않고 여전히 몰도바의 일부로 간주한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지정학적 상황은 인형 속에 똑같이 생긴 인형이 들어있는 러시아 토속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몰도바의 상황과 비슷하다. 몰도바도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갈라져 갈등을 빚고 있는데, 거기서 이탈한 트란스니스트리아도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갈라져 있다. 다만 트란스니트리아는 경제적으로 러시아 의존이 높아 러시아계가 주도권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러시아의 또 다른 월경지 될 가능성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발틱해 연안의 러시아 월경지 칼리닌그라드(옛 이름 쾨니히스베르크)처럼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계가 주도해 끊임없이 러시아와의 합병을 추진해왔다. 2006년에도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와 합병을 추진했으나 러시아의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현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지금도 다수의 주민들은 러시아와의 합병을 원하고 있다. 경제적 민족적 이유가 가장 크다. 대다수 주민들이 러시아 여권을 갖고 있고 학업이나 직업을 러시아에서 해결한다. 합병의 기회가 다시 찾아온 때가 2014년이었다.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점령했을 때 합병해줄 것을 다시 요구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러시아는 또 거부했다. 대신 재정적 지원을 제안했다. 기왕에 러시아 의존이 높았던 터에 의존성은 더 깊어졌다. 러시아가 트란스니트리아를 합병하지 않는 이유는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본토에서 떨어져 있어 통치 비용이 많이 들고 정치적으로 서방과의 관계에서 또 새로운 골칫덩이가 될 수 있다. 몰도바와 척질 수도 있다. 2014년만 해도 친 서방으로 기우는 우크라이나가 주 관심 타깃이었기 때문에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방치했다간 몰도바처럼 친서방으로 기울 위험도 있다. 먹자니 별무소용이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이었던 것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전략적 중요성
계륵이었던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우크라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 점령을 시도하면서 오데사와 가까운 이곳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러시아가 오데사를 확보하게 되면 트란스니스트리아와 8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연결이 수월하다. 이 경우 지상군 전개가 동남북에 이어 서쪽에서도 가능해 우크라 국토를 동서남북 사방에서 진격할 수 있다.
이 틈을 타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또다시 푸틴 대통령에게 합병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정도면 집요하다 못해 편집증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실제 러시아가 오데사 점령에 성공한다면, 이 지역은 전략적 가치가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미 점령한 우크라 동남부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남부의 크름반도와 연결돼 우크라를 U자로 포위하게 되고 우크라가 흑해로 진출하는 길을 봉쇄하게 된다. 우크라의 곡물수출은 막히게 되고 서방으로부터 해상 보급로도 차단된다.
현재도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합병할 생각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끈질긴 짝사랑에도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합병이라는 하드 파워를 행사하기 보다는 재정지원과 교류확대, 친러시아 세력 확장 전략을 구사 중이다. 러시아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는 현재 친서방 정권이 지속적으로 EU(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협력 수위를 높이고 있는 몰도바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직접적으로 힘을 투사하기보다 일정한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 끈을 당기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몰도바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는 순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계륵에서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를 한꺼번에 경략하는 양수겸장의 묘수가 될 것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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