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월간객석 발행인
![[포럼] 예술의 토양이 지켜온 `객석 38년`](http://contents.dt.co.kr/images/202204/2022040802102369073001[1].jpg "[포럼] 예술의 토양이 지켜온 `객석 38년`")
이 지면을 빌어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전 발행인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놓은 셈입니다. 초대 발행인 최원영 씨는 1984년 본지 창간부터 시작해, 87년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인수하여 오늘날 최고의 예술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원로들은 당시를 클래식 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회고합니다.한때 본지의 뉴욕 통신원으로 활동했던 윤석화 전 발행인은 국제통화기금(IMF) 당시의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면서 많은 사업과 활동을 하여 좋은 이미지를 다졌기에, 제가 세 번째 발행인을 맡으며 조금만 잘 만들어도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음악대학 출신도 아니고, 본지를 맡기 전까지 클래식 음악은 물론 국악, 무용 등 공연예술을 잘 몰랐습니다. 10여 년 전에 제가 암에 걸려 큰 수술과 12번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쉬고 있을 때였는데요, 제 아내의 오랜 지인인 윤석화 대표가 '객석'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적자가 나는 회사라 그런지 다들 인수를 망서린다더군요. 저도 모르게 비분강개하여 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암 투병 후 뭔가 사회에 보탬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저의 신념과도 일치하여 기꺼이 인수했고, 당시의 심정으로 지금도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늘 미안한 것은, 박봉에도 열심히 일하는 편집부 기자들과 직원들을 대할 때입니다. 다른 매체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은 고료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좋은 원고를 보내주는 국내외 전문 필자들과, 낮은 촬영료로 본지의 표지와 사진을 책임져 주는 사진 작가들에게도 미안합니다. 그래도 매년 정기구독을 꾸준히 해주시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많은 음악가와 후원인들이 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즐겁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객석'을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전임 대표들이 각각 15년씩 책임을 지고 해왔으니 저도 최소 15년은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이후는 저처럼 '멍청'하거나, 아니면 전 발행인들처럼 예술을 위해 몸 바칠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분이 맡았으면 좋겠습니다.
'객석'을 운영하면서 배우는 점도, 느끼는 점도 참 많습니다. 지난 9년간 지켜본 결과, 이 분야는 다른 산업 분야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안타깝게도 학연이나 지연, 혈연에 꽉 묶여 있고요,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않으면서 영재 배출과 'K-클래식'만 외치는 정부의 입장 등은 저 뿐만 아니라 이 바닥을 지키는 많은 분들이 느끼는 공통의 불편함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왕 책을 만들고, 시대의 기록을 남기는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다음 세 가지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음악가들은 청중을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어 더 이상 '지루한 음악회'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어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획력 있는 음악회 문화의 정착과 시도가 필요합니다.
둘째, 음악대학은 연주자를 육성하는 역할에 그치지 말고, 포괄적으로 커리큘럼을 개선(수술)하여 기획과 홍보 마케팅, 영상촬영, 무대 연출 등 21세기 공연예술에 필요한 과목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변화가 필요한 곳은 전국에 산재한 각 공연장들입니다. 선진국들처럼 공연장마다 전속 오케스트라와 성악가, 합창단, 무용단을 포진시켜 책임있고 발전적인 공연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얼마전 작고한 이어령 선생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할 때 일입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선생은 "국내에 음악대학 및 공연예술 전공 과가 많은데 왜 예술학교를 따로 만들어야 하느냐"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천부의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장애인 같은 고난의 핸디캡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온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예술가들은 많은 경우 사회성이 부족하고 외곬수입니다. 그런 그들이 살아 남아서 대중에게 꿈과 희망을 주게 하려면 앞서 제가 말한 세 가지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객석'은 그렇게 노력하는 예술가와 관계자들을 위해 계속 전진하겠습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