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신흥국 할 것 없이 전 세계가 고물가 폭탄에 신음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 물가 상승률은 7%대를 훌쩍 넘어서며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가 두 자릿수씩 뛴 신흥국에서는 견디다 못한 국민 폭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고물가 추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1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8개 회원국의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7%로 나타났다. 전월(7.2%) 대비 0.5%포인트, 전년 동기(1.7%) 대비 6%포인트 폭등한 것이다. 걸프전 발발 직전인 1990년 12월 이후 31년 2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OECD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OECD 회원국의 에너지 가격은 26.6%, 식품가격은 8.6%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대두된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 우려까지 겹쳐 상승세가 거세졌다는 분석이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 물가는 지난 2월 7.9% 치솟은 데 이어 3월에는 8.5%를 나타내 1981년 12월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특히 전월 대비 상승분의 절반은 휘발유값이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미국 휘발유 가격도 갤런당 4.33달러까지 치솟았다.
또 영국도 마찬가지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영국의 물가 상승률은 2월 6.2%, 3월 7.0%를 각각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랜트 피츠너 영국 통계청(ON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가장 많이 물가가 오른 품목은 연료세 인하 전 가격이 확인된 석유와 가구 등이었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미국이나 영국보다 물가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2월 5.1% 상승률을 나타낸 독일 물가 상승률은 3월 들어 7.3%로 폭이 커졌다. 당장 식료품 가격이 1년 전보다 6.2% 올랐는데, 독일 서민이 자주 찾는 슈퍼마켓 체인 알디는 상품 가격을 전체적으로 20~50% 올린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탓에 난방유(144%), 주유소 휘발유(47.4%), 가스요금(41.8%)도 최대 세 자릿수 뛰었다.
그나마 선진국 사정은 신흥국보다 나은 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물가 상승률이 연간 55%에 달하자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시민 수천 명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3월에만 식료품 가격이 7% 넘게 올랐는데, 아르헨티나 국민 37%가 빈곤층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서민경제가 사실상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는 관측이다.
인근 페루에서도 물가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해 정부가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페루는 3월 한달새 1.48% 물가가 올랐는데, 1996년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터키는 연간 물가 상승률이 61%를 웃돌며 2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럼에도 터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고물가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19%던 기준금리를 꾸준히 인하해 현재는 14%까지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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