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협회(CFR)는 매년 500여 명의 안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아 '예방 우선순위 조사(Preventive Priorities Survey)'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보고서는 위기 발생 가능성과 미국 국익에 미치는 영향력 정도에 따라 위험도를 세 등급으로 분류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가속화하는 추세 속에 대만은 2021년 조사에서 최초로 위험도가 가장 높은 1등급에 진입했다. 발생 가능성은 '중간' 정도이지만 영향력은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올해 1월에 나온 보고서에서도 중국이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함에 따라 미국과 역내 국가들이 연루되어 심각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 속에 1등급으로 분류되었다.
2021년 한 해 동안 대만해협 부근에서 이뤄진 중국 군용기의 무력시위는 총 239일에 걸쳐 일어났고 총 961대의 군용기가 투입되었다. 3~4년 전만 해도 1년에 100대 미만의 군용기가 투입되었던 것에 비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해협에서의 군사행동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작년 3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의 필립 데이비슨(Philip S. Davidson) 제독은 향후 6년 내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발언했고, 10월 대만 국방부 장관은 2025년까지 중국이 전면적 침공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사례와 평가들은 현재 양안의 군사적 긴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양안 긴장의 원인과 방향에 대한 시각: 국제정치와 국내정치
미중 전략경쟁의 구조화 추세 속에서 대만은 미국에게 더욱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지정학 차원에서는, 중국이 대만해협을 장악하게 되면 일본과 한국으로 통항하는 유조선 수송을 억제할 수 있고, 이를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퇴출을 요구하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경제안보 차원에서는, 반도체가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면서 공급망의 각축전 속에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가치와 규범의 차원에서는, 미국의 의회와 여론이 대만 사회가 이뤄온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을 매우 중시하고 지지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으로 삼고 있는 시진핑 주석은, 대만과의 통일 실현을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책무이자 중화민족의 염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강대국의 위치에 올랐다 하더라도 대만과의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중국의 꿈"을 실현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양안관계에는 구조적 영향을 미치는 두 개의 삼각관계가 존재한다. 큰 삼각관계인 미국, 중국, 대만 사이의 관계성과 작은 삼각관계인 중국공산당, 민진당, 국민당 사이의 관계성이 상호 작용한다. 예컨대 작은 삼각관계가 안정됨으로써 큰 삼각관계의 안정을 유도하기도 하고, 작은 삼각관계에 문제가 발생할 때 큰 삼각관계에서 안정을 견인하기도 한다. 마잉주 정부 시기가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교류협력을 추진함으로써 큰 삼각관계의 안정화를 이끈 경우라면, 천수이볜 정부 시기는 작은 삼각관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큰 삼각관계 속의 미중 관계가 견고하게 대만해협의 불안정성을 제거한 경우이다.
현재 대만해협에서의 안보 위기 고조는, 큰 삼각관계의 측면에서 중국과 대만 사이에 힘의 비대칭성이 커지고 균형추 역할을 하던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평화 및 안정의 유지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작은 삼각관계의 측면에서도 민진당의 차이잉원 정부가 탈중국화와 미국 편승전략을 추구하면서 중국공산당이 민진당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견제, 민진당의 집권, 대만 사회의 탈중국화 및 정체성의 정치 강화에 따라 평화적 통일을 위한 출구를 찾지 못하며 조급해진 상황이다. 2016년 민진당 집권 이후 양안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는데, 2019년 여름의 홍콩 시위와 강경한 진압,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가 촉매 작용을 하면서, 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고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작년 11월 15일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화상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두 지도자는 미중 간 충돌 가능성이 높은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고, 대만 문제가 양국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시진핑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켜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만약 대만독립 세력이 계속 도발하고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중국은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도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직접적으로 밝혔다. 회담 내용은 양안관계의 미래를 시사한다. 즉, 대만해협에서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평화와 안정의 유지는 어렵지만 '가드레일'을 마련해서 군사적 충돌은 벌이지 말자는 것이다.
올해 중국·미국·대만은 내부적으로 각자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변화는 양안관계의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는 중국에서 10월 하순 경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가 개최되어 새로운 당 지도부가 구성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지도부 구성상의 변화도 주목할 만한 변수이다. 둘째는 미국에서 11월 초순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임기 2년의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임기 6년의 연방 상원의원 3분의 1인 34명, 36개 주의 주지사 등을 선출하는 중요한 선거이다.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 가장 큰 선거이자 대통령 임기의 중간 시점에 치러지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셋째는 대만에서 11월 하순 직할시장, 직할시의원, 현장 등을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역시 대통령 선거 외에 가장 중요한 선거이고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번 선거는 여론의 양극화가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고 대만 여론에 대한 중국의 직간접적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의 리더십 변화와 미국 및 대만의 선거 결과가 중요한 것은, 각각의 정치체가 내부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리더십 변화가 대외 전략의 방향을 설정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군사충돌이 가능할 것인가? 전쟁 vs. 현상유지
중국은 통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양안 통일에 과도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대만은 국내적으로 경제사회적 문제를 중국 탓으로만 돌리며 반중 정서를 국내정치에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카드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국내정치적 동학 속에 전쟁의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엄밀하게 평가하자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사용은 고위험 선택지에 해당한다. 성공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력사용 여부와 시기의 문제는 군사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다. 대만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상당한 제약요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제약 요건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로 이어질 수 있는 불확실성 △중국경제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피해 △국제사회에서 전쟁을 일으킨 중국을 처벌하고 봉쇄하려는 연대의 가능성 등이다. 이러한 제약 요건을 넘어서는 결정은 우발적이거나 돌발적인 상황을 상정할 때만 가능하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세계 최강국이 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군은 여러 강군 건설 목표를 설정해 놓았고 서태평양에 진입하는 능력과 대만을 점령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미군과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미래 목표를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섣불리 대만에 무력을 사용할 경우 이 목표는 지연될 수 있다.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등 여러 연쇄효과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사용하는 전제 조건은 세 가지 경우이다. 중국이 자신의 군사력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을 갖고 있거나, 중국공산당 정권이 불안하거나, 대만이 쉽게 항복하고 미국이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이 정세를 오판하는 경우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협의 상시화와 인지전의 전개 등으로 인해 대만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안보적 부담은 가볍지 않다.
결론적으로, 현재 대만해협에서의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언제든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전쟁을 벌일 법적 근거는 대만의 집권 세력이 국민투표 등을 통해 대만의 법적 독립을 추진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대만의 그러한 법적 독립 추구에 대해서는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남아 있고, 대만 사회에서도 '현상유지'가 주류 여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인민해방군은 미군 개입을 상수로 놓고 전쟁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대만과 미국의 공급망 재편은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이상 vs. 현실
무엇보다 대만은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웨이퍼의 92%를 생산하고 있다. 대만 반도체 산업은 사실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보장하고 있는데, 전쟁이 일어날 경우 중국 스스로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의 이익에 큰 해를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보여준 것처럼 전쟁의 전개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으며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도 전쟁의 대가와 불확실성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대만은 경제적으로 다른 어떤 경제체보다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이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과 미국의 협력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지만, 양안 간의 경제관계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대만과 중국 사이의 교역 관계는 대만과 미국 사이에 이뤄진 공급망의 초석이자 연장선이다.
1980년대 초 대만의 대미 수출이 빠르게 성장하여 1984년에 이르러서는 대만의 대미 수출 비중이 48.8%를 기록하고 상당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에 대만은 미국의 정치적 압력을 받았고, 대만의 화폐가치가 대폭 상승하여 수출 경쟁력이 크게 하락했다. 수출 경쟁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 대만정부는 기업들의 중국 투자를 개방했고 전통 산업이 대규모로 이전했다. 2000년대 전반에 컴퓨터와 노트북 등 대만의 정보통신 산업도 중국으로 이전했는데, 이것이 대만과 미국 사이의 공급망을 연결하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대만의 정보통신 기업은 미국 기술 분야 기업들과 긴밀하게 협력했다. 미국 기업은 기술과 브랜드 마케팅을 장악하고 있었고, 대만 기업은 제품 설계와 제조 통합 탄력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제조는 중국에 세운 공장에서 이뤄졌다. 미국, 대만, 중국 3자가 협력하여 고효율 수직 분업을 수행하고 신기술을 저렴한 제품으로 빠르게 전환시켜 글로벌 시장에 침투했다. 거기서 생긴 기업의 잉여는 다시 연구개발에 투입되어 기술 진보를 가속화시켰고 기술 혁신 선순환의 모델을 형성했다.
컴퓨터, 노트북,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대만 기업은 대부분을 중국에서 위탁생산해 왔다. 2019년의 경우 중국 100대 수출기업에 23개의 대만 기업이 들어가 있고 이 기업들이 수출액의 43%를 차지했다. 대부분이 정보통신 분야의 제품이었다. 대만 기업이 중국에서의 생산에 투자했기 때문에 양안 간 공급망 발전이 이뤄진 것이다. 2007년의 경우 중국(홍콩 포함)은 대만 수출의 40.7%, 수입의 13.6%를 차지했고, 2020년에는 수출이 43.9%, 수입이 22.6%의 비중을 차지했다. 양안의 쌍방향 공급망 구조가 이미 오래 전부터 대만과 미국을 넘어 긴밀한 분업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공급망 재편은 경제안보와 핵심적으로 연계된 분야에서만 실행되어져야 한다.
◆딜레마 속 한국 기업의 선택: 기술우위와 필수불가결성 유지가 해답
30여 년간 글로벌 상호의존성을 구축해 온 산업 구조를 지정학적 고려에 따라 한 순간에 바꾸겠다는 논리에는 허와 실이 공존한다. 지정학이 귀환한 시대에 각국 정부의 입장에 맞춰 대응하려고 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기업을 중심으로 고객 지향의 원칙에 따라, 지정학의 논리에서 어떤 것이 실(實)이고 어떤 것이 허(虛)인지를 식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반도체 공급망의 본토화, 즉 국가별 리쇼어링이나 자급자족을 촉진하는 정책은 공급망의 회복력을 향상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재 대만이 마주하고 있는 선택의 기로는, 어떻게 양안관계에서 안보를 지키며 경제적 번영과 경쟁력도 유지하느냐이다. 대만은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정착시켰고,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1980년대 이후 대만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어느 세력이 집권하든 정치적으로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왔고 최선의 대응 전략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을 누리면서 중국의 정치적 요구에 거리를 두는 것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미중 경쟁의 게임 체인저가 된 상황에서 대만과 한국은 스스로의 경제안보를 지켜야하는 입장이다. 경제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위협의 정도와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 등의 국가들에게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기술 우위와 필수불가결성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중국 시장이 한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재조정 요구 상황에서 우리의 첨단기술 제품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이때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못함으로써 손실을 자초하기보다 우리의 손실이 미국에게도 불리한 것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내부적으로도 국가의 논리와 기업의 논리가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망 재편의 시대에 한국과 대만의 기업들은 '듀얼 헤드쿼터(dual headquarters)'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단일 헤드쿼터 전략을 취하고 있는 TSMC의 경우에는 기술 영역을 제어하는 최첨단 수준의 연구개발 역량과 공장을 대만 내에 두고 있다. 그러나 기술 수준이 최첨단 수준보다 약간 아래인 5나노미터 생산 공장은 미국에 건립하고, 일반적 기술 수준의 16나노미터에서 12나노미터 생산 공장은 중국 난징에 두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전략적 지위가 달라 TSMC의 단일 헤드쿼터 전략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미국 관련 사업 기회를 처리하기 위해 자국에 본사를 유지하고, 중국 관련 사업을 위해 해외에 또 다른 본사를 설립하는 듀얼 헤드쿼터 전략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며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사실 국가안보와 연결된 첨단 기술 영역에 속한 제품이 아니라면,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을 모두 활용하며 양쪽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77호' 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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