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농협의 '세계곡물가격 변동성과 식량안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유엔식량농업기구 (FAO)의 세계곡물가격 지수는 지난 3월 역대 최고치인 170포인트(P)를 기록한 후 4월 169.5P로 소폭(0.4%) 하락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가 발간한 '국제곡물 5월호'를 보면 지난달 톤(t)당 일평균 밀 국제 선물가격은 전달(413달러) 대비 -5.1% 하락한 392달러로 집계됐다. 콩은 t당 617달러로 변동이 없고, 옥수수는 t당 303달러로 4.7%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밀은 59.8%, 옥수수는 27%, 콩은 14.6% 각각 올랐다.
연구원 측은 "밀 가격은 지난달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가능성에도 최고가를 기록한 후 차익 실현 물량으로 소폭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흑해 지역의 공급 차질, 미국 봄밀 파종 지연 및 가뭄 현상도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농협은 "(2010~11년 곡물 파동 후) 추세적 상승세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쳐 상승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값싼 곡물 시대가 끝나고 다시 비싼 곡물 시대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최근 곡물 파동의 특징은 과거(2010~11년)와 달리 세계 곡물 기말재고율은 지난 3월 기준 26%(공급/수요)로 FAO가 규정한 적정재고율(17~18%)를 웃도는 등 수급은 안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공급망 단절, 미-중 무역 분쟁, 주 생산국의 기후여건, 세계 밀 수출량의 30%를 차지한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등이 곡물 가격을 급등시키는 새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주요 곡물 생산국들은 곡물 가격 인상이 자국 내 수급에 영향을 주자 수출량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곡물 수출에 타격을 입어 올해 76만3000톤을 수출해 지난해 같은 기간 280만톤 대비 36%에 불과한 상황이다. 전세계 팜유 생산의 절반을 담당하는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금지하고 아르헨티나(대두유). 헝가리(곡물) 등도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각 작물별로 상위 5개국들이 생산량(밀 64.9%, 옥수수 73.3%, 대두 89.9%, 쌀 72.5%)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국에서 우선 소비하고 작황이나 정책에 따라 수출을 제한할 수 있어 변동성이 큰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여기에 생산과 유통단계 전 가치사슬을 곡물메이저회사들 독점해 이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2020년 기준 곡물 자급률이 20.2%지만, 쌀을 제외하면 3.2%에 불과하다. 해외농업개발협력법에 따라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들여온 곡물도 2020년 10만9000t 수준이다. 2018년 4.7% 하향한 곡물 자급률 목표치 27.3% 조차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곡물가격변동성이 고스란히 국내 물가에 전이된다. 연구원 측은 곡물 수입단가 10% 인상 시 가공식품 가격은 3.4%. 외식물가 0.58%, 배합사료 가격은 5.3% 올라 물가 상승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중식당을 홍성우(62)씨는 "옥수수유 가격이 지난해 1.8리터 한 통에 2만5000원에서 올해 5만원대로 배로 올랐다"이라고 말했다. 마포구 망원월드컵시장에서 분식 가게를 운영하는 김칠성(59)씨는 "밀가루 20kg은 1만2000원 하던 게 2만4500원까지 올랐다"며 "코로나 전 매출에서 재료비가 20%대였다면 이제 40%대까지 올랐다"고 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장관 취임 후 첫째 목표로 '식량안보 극복'을 꼽았다. 정부는 국정과제로 밀·콩 등 전문 생산단지와 비축시설을 확보, 민간기업의 해외 곡물공급망 확보에 필요한 자금 지원 등 내세웠다. 식량안보 등 선택형직불제 확충도 추진될 전망이다.
농협은 곡물 파동으로 세계 각국이 식량 수요 충족을 위해 수출을 제한하는 식량 무기화가 현실화하고 있는 만큼 식량안보 정책을 일관된 기조로 시행할 수 있게 '국가재정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동법에 '성인지 예산'과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 등이 명시된 것과 같이 '식량안보에 대한 예산편성 반영' 조항을 명시해 일관된 기조로 식량안보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민호기자 lmh@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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