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였던 이재명(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치적·개인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 의원의 당권 도전을 놓고 반대여론이 거세지고 있고, 자신이 성남시장 재임(2010~2018)할 때 각종 인·허가를 추진한 개발사업은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대권 재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 의원이 이런 위기상황을 어떻게 돌파해나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
◇당내 모임, 원로들 '이재명 전당대회 나오지 마라'
17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 의원의 당권 도전 반대 여론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당내 각 모임이 개최하는 대선·지선 평가 토론회에서 나온 반대 의견에 이어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주축으로 구성된 '더좋은미래'(더미래)가 사실상 불출마를 권유하는 성명서를 냈다. 더미래는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민주당은 지난 4·7 보궐선거, 대선, 지선까지 연속해서 선택받지 못했다"며 "지금 변하지 못하면, 유권자의 선택은 굳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8월 전당대회는 다름과 새로움으로 가득해야 하며, 시대 변화를 반영한 가치와 철학, 당의 노선을 재정립하는 전기가 돼야 한다"며 "'더미래'는 이번 전대에서 새로운 가치와 의제 그리고 인물의 부상을 통해 민주당의 얼굴과 중심을 바꿔내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주장했다.
더미래의 이같은 주장을 두고 이 후보의 대안세력으로 거론되는 97그룹(90년대 학번, 70년대생)에 힘을 실으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97그룹 내에선 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 의원이 주요 후보군으로 꼽힌다. 이날 당 상임고문단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이재명 책임론'이 거론됐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책임 문제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게 민주 정당의 기본"이라며 "(선거 패배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에서) 후보로 나간 사람은 졌으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당을 이끌었던,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은 상징적으로 책임을 안 질 수가 없다"며 사실상 이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를 사실상 직격했다. 대선 후보에 이어 6·1 지방선거에서는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이 의원과 대선 당시 당대표로서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송영길 전 대표가 정치적 책임을 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초재선 의원 11명이 지난 14일 국회에서 개최한 대선·지선 평가 토론회에서도 이 의원이 전대를 불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경찰 성남시청 압수수색
이 의원 개인이 처한 상황도 녹록치 않다. 경찰은 이 의원이 성남시장 재임시절 인·허가를 했던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1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성남시청에 수사관 10여 명을 투입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시장실, 부시장실, 도시주택국장실, 교통도로국장실, 도시계획과 등 이 사업 관련 부서 9개가 포함됐다. 경찰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백현동 관련 인허가 자료와 함께, 이 의원과 이 의원의 측근인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비서관 등 20여명의 이메일 자료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이 의원과 정 전 비서관이 피의자로 적시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은 부동산개발회사인 아시아디벨로퍼가 지난 2015년 2월 한국식품연구원으로부터 부지(11만1265㎡)를 매입해 시작했다. 이후 성남시는 2015년 4월 부지의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했다. 또 당초 전체 가구가 민간임대로 계획됐는데 2015년 11월 민간임대는 123가구(전체 가구의 10%)로 줄고 분양주택은 1100가구(90%)로 대폭 늘었다. 그 덕분에 시행사는 약 3000억원의 분양 수익을 냈다.
이 때문에 인허가 과정부터 이 시장 후보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인사를 영입했던 점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또 김 씨는 성남시의 용도 변경에 관여한 대가로 7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고발인 조사 등을 진행했으며 앞으로 압수수색 자료 분석 등을 거쳐 성남시 담당 공무원과 민간 개발업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용도변경 특혜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위기 돌파하고 당대표 출마하나
이 의원도 이런 상황을 두고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 의원은 일단 경찰과 검찰의 움직임에 반격에 나선 상태다. 일단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론전을 시작했다.
이 의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수사팀이 지난해 말 자신의 성남시장 시절 당시 배임 혐의를 수사했었다는 보도를 공유하며 "검찰을 이용한 정치보복, 정치탄압이 시작된 듯"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단체장 누구도 안하는 개발이익 환수를, 저는 국힘의 방해를 뚫고 당초에는 확정이익 4400억 원을, 나중에는 1100억을 추가 환수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로비 시도 했지만 10년간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 한 남욱. 뇌물 수수 사실은 이재명에겐 죽을 때까지 숨겨야 한다고 한 그들. 추가부담 시켰다고 김만배에게 쌍욕까지 들어가며 성남이익 챙긴 이재명. 이것이 배임이라고?"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형님의 정신질환 증거를 숨기고, 멀쩡한데 강제입원 시키려 했다고 불법 기소했던 것처럼 이 사건도 무혐의지만 일단 기소해서 정치·경제적 타격을 입히자는 음모가 있다는 말도 들었다"며 "21세기 대명천지에 또다시 사법 정치 살인을 획책하자는 것인가? 정치보복, 사법살인 기도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다만 이 의원의 여론전이 검찰과 경찰에 정치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경찰은 이 의원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논란과 관련해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할 것"이라고 강조한 상황이다. 또 국민의힘 소속 신상진 성남시장 당선자는 최근 민주당 시장 재임 12년을 '부패'로 규정하고 적폐 청산을 공언했다. 그는 이 의원이 추진한 대장동·백현동·고등동 개발사업을 '3대 특혜 의혹'으로 규정한 상태다. 또 시장직 인수위원회는 백현동 사업 등 민주당 시장 시절 의혹 사건의 자료를 포함해 모두 169건의 자료 제출을 성남시에 요청했다. 이 위원 입장에선 대응하기가 만만치 않는 상황히 계속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당내에서는 당 대표 출마와 관련한 찬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 의원측 관계자는 지난 15일 기자와 만나 "당권 도전 여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 이전 상태로 보면 된다"며 "당내 여러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친명계 일각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리지만 당내 대다수는 이 의원이 출마를 강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민주당 관계자는 "이 의원이 차기 대권 도전의 기반이 될 당대표를 할 의도가 없었다면 보궐선거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선 당시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자치단체장으로서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며 "총선 공천권을 통해 '자기 사람'도 심고 대권까지 재도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 첫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상임고문이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문희상 상임고문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찰이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청에서 백현동 아파트 개발 사업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