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김가진, 일제의 `남작`에서 독립의 `국민`으로](http://contents.dt.co.kr/images/202207/2022072102102269061001[1].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김가진, 일제의 `남작`에서 독립의 `국민`으로")
대한제국 친일 대신으로 '남작' 받았지만
70여세에 대동단 총재 되어 해외서 활동
상해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 수백명 달해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은 1846년에 태어나 1922년 타계했다. 그는 '선(先) 친일· 후(後) 독립운동'을 한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대한제국의 친일 대신이었고 남작 작위까지 받았지만 후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생을 마쳤다. 그의 타계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학술회의와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그에 대한 재평가를 기대하면서 100년 전의 김가진을 만나러 가보자.
1922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부고(訃告) 하나가 실린다. 김가진 선생의 부고다. "김의한(金毅漢)씨 대인(大人; 아버지) 김가진 선생께서 숙환으로 7월 4일 오후 10시에 상해(上海) 법조계(法租界; 프랑스 조계) 패륵로(貝勒路) 수경방 10호에서 별세하였기에 이에 고부(告訃)하나이다. 임술(壬戌; 1922년) 7월 5일. 호상(護喪) ; 이발(李發), 박은박(朴殷舶), 이동녕(李東寧), 이시영(李始榮), 홍진(洪鎭), 김인전(金仁全), 김철(金徹)."
김가진의 장의(葬儀)는 상해에서 열렸다. "지난 4일 밤에 서거한 김가진 씨의 장의는 상해 재류(在留) 조선인 유지의 열성으로 10일 오후 만국공동묘지에 매장하고 추도식을 거행하였는데, 참회(參會)한 사람이 수 백 명에 달하여 비상한 성황을 이루었더라." (1922년 7월 13일자 동아일보)
장례를 치를 돈도 없다는 소식에 자기 학비의 일부를 부의(賻儀)로 보낸 학생의 기사가 눈에 띈다. "김가진 씨의 서거에 대하여 그 유족이 곤경에 있음을 듣고 시내 중앙청년회 학과에 재학 중인 경남 하동군 청년 이홍식(李弘植)은 자기 학비에서 5원을 떼어서 동아일보에 부탁하여 유족에게 보냈으며, 그 외 다수한 유지 인사들도 부의를 보냈다더라." (1922년 7월 13일자 동아일보)
김가진은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제에 적극 협력했고,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이후에는 법부대신, 중추원부의장 요직을 지냈다. 한일합병 직후에는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1910년 10월 7일 조선귀족령에 따라 이재완·박영효 등 6인이 후작, 이완용 등 3인이 백작, 박제순·송병준 등 22인이 자작, 김가진·이윤용 등 45인이 남작을 받았다. 그런데 1919년 3·1 독립만세의거가 일어나면서 그의 인생은 전환됐다.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그는 조선민족대동단(대동단) 총재에 추대됐다. 일제가 수사망을 좁혀오자 상해로 망명했다. 그 곳에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타계했다.
김가진이 상해에서 서거한 후 그에 대한 기사들은 당시 매일신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매일신보가 총독부 기관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아일보에 서거 후 그에 대한 기사가 꾸준히 실리고 있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김가진, 일제의 `남작`에서 독립의 `국민`으로](http://contents.dt.co.kr/images/202207/2022072102102269061001[2].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김가진, 일제의 `남작`에서 독립의 `국민`으로")
1922년 7월 7일자 동아일보에 '독립운동 수령 중의 최고령, 상해 망명 중의 비참한 생활'이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김가진 씨는 그간 신병(身病)으로 치료 중이더니, 마침내 4일 오후 10시에 별세하였더라. (중략) 해아(海牙; 헤이그) 사건이 일어난 뒤를 따라 민간으로부터 활동하고자 대한협회의 회장이 되었으나 일한합병과 동시에 대한협회도 해산한 후에는 일체의 관직을 사양하고 한가히 세월을 기다리다가 1910년 3월에 '독립만세'의 부르짖는 소리가 13도의 산하를 울리며 세계의 대세가 크게 변함을 보고 당시 독립운동의 유력한 단체로 일어나는 대동단(大同團)의 총재가 되어 70여 세의 늙은 몸을 이끌고 비밀리 국경을 넘어 상해에 이르렀는데 (중략) 일한합병 당시 귀족의 작위를 받은 자로 조선 안에서 독립을 주장한 사람은 김윤식(金允植), 이용직(李容稙) 두 분이 있었으나, 해외에 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한 사람은 오직 혼자이며,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의 수령으로는 가장 연고(年高)한 분으로 조선 독립을 뜻하는 사람에게 공경을 받았으며, 상해에 건너간 이후의 고생은 거의 극도에 이르러 80세에 이르도록 하루 한 끼를 먹지 못하여 거의 기한(飢寒)이 도골(到骨; 극에 달함)한 중에서 이 세상을 마쳤더라."
가장(家長)이 이렇게 상해로 망명하면서 조선에 남은 가족들의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922년 7월 8일자 동아일보에 '애통에 싸인 김가진 씨 가족'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이강공(李堈公) 전하를 중심으로 하여 제2차의 조선 독립운동을 일으키려고 70여 세의 늙은 몸으로 국경을 넘어 상해 법조계의 패륵로라는 곳에 조그마한 집 한 채를 빌려 가지고 외로운 생활을 하는 동안에, 어느덧 4년의 긴 세월이 지나고 날마다 쇠약해 가는 늙은 몸에는 어느덧 고치기 어려운 풍병(風病)이 발생되어 지난 4일 밤에 만고(萬古)의 유한(遺恨)을 머금고 외로운 여생에서 드디어 이 세상을 떠났다. (중략) 김가진 씨가 상해로 간 후로 가족들은 다수한 가솔(家率)을 데리고 이곳 저곳의 사글세 집으로 쫓겨 다니다가 수 일 전에 시내 적선동 160번지 되는 남의 집 사랑채 두 간(間)을 간신히 사글세로 빌려 당분간 여러 식구가 몸을 담고 있게 되었다 한다. (중략) 단칸방에는 10살 먹은 김씨의 막내딸 되는 영양(令孃)을 비롯하여 37세 되는 김씨의 부인이 아이들과 손목을 잡고 흐느껴 울 뿐이요, 위문객의 자취도 없이 슬피 내리는 빗소리와 흐느껴 우는 처량한 곡성(哭聲)이 들릴 뿐이다."
이어 기사는 계속된다. "김씨의 부인 이필수씨에게 면회를 청한 즉, 치마끈으로 눈물을 씻으며 목이 메이는 소리로 (중략) 경찰서에서 내왕하는 사람을 성가시게 취체를 하는 까닭에 찾아오는 친척도 없습니다. 이리저리 사글세 집으로 돌아다니는 중에 세간은 한 가지 두 가지씩 전당(典當)이나 혹 팔아서 열 한 식구의 생명을 이어 가며 날마다 기쁜 소식이나 있을까 하여 밤이면 잠을 아니 자고 기다리더니, 이제는 어찌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종합적으로 해야한다. 그 생의 한 시점만을 떼어 생애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가진의 경우도 그렇다. 평가는 엇갈릴 수는 있지만 77세의 나이로 상해로 망명해서 하루 한 끼를 먹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마친 분을 위해 술 한 잔 정도 바치는 것은 후세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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