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특권계층)를 인정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든 창설할 수 없게 돼있다. 훈장에 대해서도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고 명문화했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로든 '보상'이 아니라 물질적 신분적 '특혜'를 부여하는 입법은 헌법 위반이다. 자연법사상에서도 특권을 보호하는 목적의 입법은 애시 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와 평등을 침해해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법자들은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현대에도 갖은 명분을 내세워 특혜를 누리려는 집단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두 번이나 추진하다 거센 여론의 반대에 막혀 포기했던 민주화운동 유공자 예우법을 다시 들고 나왔다. 운동권 출신이 많은 민주당이니 국민의힘은 '셀프특혜법' '운동권 특권 세습법'이라고 비판한다. 민주당은 자당 의원 중 단 1명도 혜택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5년 '운동권정권'에서 그들끼리 주고받은 특혜의 생태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법 적용을 받는 대상자들은 주로 1987년 6월 항쟁 유공자와 그 직계존비속이다. 국회 앞에서 9개월째 입법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와 국회 정무위에 따르면 유공자는 800여명, 유가족은 4000명 내외로 추산된다. 그들에 돌아가는 혜택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열차와 항공료(국내선) 할인과 고궁 입장료 면제 등에서부터 공공·민영주택 우선 공급권, 은행대출 이자 감면, 각급학교 수업료 면제와 대학 편·입학 특례, 공무원·공공기관 취업 시험 만점의 5% 가산점 부여 등이 있다. 교육·취업·주거·교통·의료·양로·양육 등 한 사람이 전 생애주기에서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의 특혜를 망라하고 있다. 이런 혜택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이걸 누리면 '현대판 귀족'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싶다.
특히 대학 편입학과 취업 특혜는 2030 세대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공정과 정의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사회 출발부터 특혜의 벽에 부딪히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경쟁률이 수십, 수백 대 일이 되는 공기업 입사시험과 각종 자격시험은 1점이 아니라 소수점 점수로도 결과가 갈린다. 그런데 만점의 5%의 점수를 부여한단다. 5·18 민주화유공자 예우법이 시행된 후 경찰·교육 공무원, 공공기관 공기업에 특정 집단 출신 비율이 유독 많아졌다. 거기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면 벼락같이 달려들어 비판을 못하게 한다. 성역이 돼가고 있다. 공로는 자랑할 만한데, 명단 공개를 법으로 막았다. 과도한 혜택에 염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 유공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예우는 2015년 시행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과 관련한 법률'로 이미 이뤄진 적 있다. 유족들은 민주화 유공을 인정해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민주화 유공자들이 앞장서서 자기를 희생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없다. 문제는 그를 기화로 지나친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다. 혜택을 누리는 사람도 대부분 유공자 당사자가 아니고 가족이다. 유공자들이 목숨 걸고 싸운 이유는 특혜 없는 민주주의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유가족은 특혜를 위해 싸운다.
민주당과 일부 유가족의 과욕에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는 유공자들도 적잖다. 민주화 유공자인 김영환 충북지사는 작년 두 번째 법안 추진을 접하고 "운동권 동지들의 위선에 분노를 느낀다"며 유공자증을 반납했다. 민주화운동의 대부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민주화는 모든 국민의 업적"이라며 지원을 사양했다. 6월 항쟁에서 넥타이 부대와 시장바구니를 든 주부 등의 참여가 없었으면 6·29 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당시 20대 청년치고 최루탄 눈물 안 흘려 본 사람 거의 없다. 지금의 50·60대들은 백골단의 몽둥이를 피해 화장실로 골목으로 피신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새고 나온 경험도 부지기수다. 민주화는 특정 세력이 전유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성취다. 전 국민이 유공자다.
우리 사회가 저마다 자신의 노력 없이 이렇게 특혜를 추구하려 한다면 사회 건전한 기풍은 흐려진다. 이렇게 지대추구 경향이 강해지면 그나마 남아있는 '경제 하려는 의욕'은 다 사그라질 것이다. 총요소생산성 견인의 한계에 직면한 한국경제는 기로에 서있다. 새롭게 정신무장을 해도 될똥말똥일 판에 국민들의 힘을 빼는 일은 없어야 한다. 평등을 목숨처럼 외치는 사람들이 대다수 국민을 차별하는 반(反)헌법적 불평등 입법을 강행하려 한다. 법을 만들려거든 차라리 '전국민유공자법'을 만들라. 논설실장
![[이규화 칼럼] 차라리 `全국민유공자법`을 만들라](//contents.dt.co.kr/images/202207/2022072702102269660002[1].jpg "[이규화 칼럼] 차라리 `全국민유공자법`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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