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금융부동산부 증권팀장
![[DT현장] 팬데믹의 계산서](http://contents.dt.co.kr/images/202207/2022072802102269066001[1].jpg "[DT현장] 팬데믹의 계산서")
2년 전이다. 국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 2020년 3월 코스피 지수는 1400 중반대까지 급락했다. 발작이라고 할 만한 폭락장이었다. 하루에만 8%씩 내린 적도 있고 한 달에 30%나 후퇴했다. 코스피 시장엔 18년 만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는데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속보를 쓰고 돌아서면 이번엔 사이드카였다.
서킷브레이커는 주식시장과 관련 파생상품 시장의 매매거래를 20분간 정지하는 제도다. 전기가 과열되면 회로 차단기(circuit breaker)가 작동하듯이 과열 시장을 잠시 식히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순식간에 시장은 팬데믹 공포에 사로잡혔다.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는 매일 기하급수로 늘었고,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실물경제 활동은 완전히 위축됐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부양책을 폈지만 나는 회의적이었다. 기존의 통화·재정정책으로 유래 없는 팬데믹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이미 정책금리가 0%에 근접하고 있었다. 막말로 팬데믹은 전쟁이 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재건을 통한 경제 성장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해 9월 조선대 홍태희 교수가 쓴 논문을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경제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거시경제가 아직 정상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특단의 경제정책이 제시되지 않고 기존의 통화정책 같은 정책을 반복한다면 세계 경제는 단기적으로는 'K자형' 경기회복, 장기적으로는 'L자형' 장기 불황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근본 원인이 제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목한 원인은 자본주의적 경제 운영이 가져온 실물 부문의 과잉 축적, 과잉 생산과 이윤 감소, 금융부문의 과열과 폭락, 실질가치를 동반하지 않는 자산 버블이었다. 아무래도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국내 증시의 미래를 어둡게 본 외국인과 기관 대신 '동학 개미'라는 별명의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를 밀어 올렸다. 수직상승한 코스피는 1년도 채 안돼 사상 처음으로 3000선을 뚫었다. 지난 2020년 3월 이후 1년 동안 장중 최저점 대비 최고점은 무려 120% 이상 상승했다. 몇 달 뒤엔 3300선도 넘었다. 거의 모든 방식을 총동원해 풀려나간 돈들은 증시와 코인 거래소에 몰렸다. 우리 시장의 초호황기가 온 것이다.
시장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올해 들어서다. 경기 침체란 말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코스피가 연중 최저점을 내주고, 지난해 개당 8000만원을 웃돌았던 비트코인 가격은 30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빚투'로 쌓아간 증시는 금리 인상과 함께 속절없이 떨어졌고 거래대금은 말라버렸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을 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원유 등 원자재 수급 불안정이 극심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촉발시켰다. 미국은 40년만에 최고로 오른 물가에 대응해 긴축의 속도를 높였고 이는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물가는 고점을 모르고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물가는 급등하는데 경기는 둔화되니 한국은행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는 분위기다. 미국이 '빅스텝'을 잇따라 추진하면 금리가 역전돼 해외자본 이탈이 심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향후 경기를 보여주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 역시 지난해 2월부터 줄곧 100을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침체를 말할 단계를 아니라고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경기 침체가 온다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워져 버린 민간과 정부 부채가 뇌관이 될 것이다. 그동안 밀린 계산서가 날아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실업률은 높아지고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신용경색이 일어난다. 그러면 고령층, 저소득,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등 생계형 가계부채 고위험층의 삶이 먼저 망가진다. 나는 이번에도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이윤희 금융부동산부 증권팀장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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