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금융부동산부 증권팀장
![[DT현장] 증시를 위한 중앙은행은 없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208/2022083002102263066001[1].jpg "[DT현장] 증시를 위한 중앙은행은 없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이 즐거운 대화와 흥겨운 음악, 기름진 음식을 즐기고 있을 때 너나 없이 퍼마시던 큰 술 사발을 치우는 일을 맡는다니, 생각만 해도 등어리가 따갑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다. 펀치볼을 치우고 사람들을 안전히 제집으로 돌려 보내는 일이 구체적으로는 가리키는 건 바로 금리 인상이다. 사람들이 취하고 식기가 깨지고 싸움이 나거나 불이 나기전에, 그러니까 경기가 과열돼 부작용이 커지기 전에 중앙은행은 이를 막아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과 주식시장은 상호 공생 관계였다. 2000년대 초반 이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확대돼 온 통화팽창 기조는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제로금리에 가까운 저금리 기조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가속화됐다. 이렇게 곳곳으로 풀려나간 유동성은 자산가격 상승으로, 부동산 시장과 증시의 호황으로 번져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리 하락세가 본격화됐다.
2013년 5월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하는 발표를 하면서 신흥국에서의 자본 유출 등 긴축 발작이 일어났다. 이후 풀려나간 유동성에 대한 정상화 시도가 조심스럽게 논의되던 차에 전세계는 예기치 못한 팬데믹을 맞게 된다. 지난 2020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에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광범위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전세계 중앙은행의 맏형 뻘인 연준을 중심으로 기준금리 인하가 이어졌고 금융위기 당시에 시행했던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 조치들도 다시 돌아왔다.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국공채 매입에 나서 금융시장을 지원했다.
최근 십수년간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변동성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은 총재 입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 같은 말이 자주 나왔다. 일본은행은 증시 부양을 위해 과도한 주식 매입에 나서 기업의 실질 가치를 왜곡시킨다는 지적도 받았다. 중앙은행은 자의반 타의반 오랫동안 증시 등 자산시장을 지원해왔다.
연준 역사상 가장 기습적으로, 또 자주 펀치볼을 치웠던 의장은 바로 1979년 취임한 폴 볼커일 것이다. 볼커는 취임과 동시에 긴축을 통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경기 침체가 심해질 것이란 정치권의 항의에도 취임한지 두어달만인 10월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4%포인트나 올렸다. 그 유명한 '토요일 밤의 학살'이다. 1980년 4월에는 기준금리를 17.6%까지 끌어올렸고, 1981년 6월 인플레이션이 14.8%까지 치솟자 20%까지 올렸다.
시중 금리가 21.5%까지 치솟자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했다. 기업들이 파산하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1980년 6월 14.8%까지 올라갔던 인플레이션율이 1981년 9%로 꺾였다. 1982년에는 목표치 4%에 도달하며 긴축을 풀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볼커 전 의장의 초고금리 정책이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것을 기억한다. 지난 주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의장은 "1980년대 초 볼커 의장의 인플레이션 억제 성공은 앞서 15년간 물가를 낮추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실패한 뒤에야 나온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지금 단호하게 행동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볼커가 나오지 않도록, 아니 되지 않겠다고 하는 다짐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경제 성장이 느려지고 노동시장이 악화하는 등 가계와 기업에 고통이 불가피하겠지만, 물가 안정 복원의 실패는 훨씬 더 큰 고통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 "인플레이션의 부담은 가장 그것을 견딜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가장 크게 지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경기 부양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도 중앙은행이 지향할 바이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생기는 서민들의 고통을 초장에 진압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역할이다. 이제 중앙은행은 금융시장보다 실물 경제의 기초 체력 살리기를 택했다. 그게 잊었던 자신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제 파티를 정리하자. 사고 없이 주말 파티를 정리하고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면 주말은 다시 올테니까.
이윤희 금융부동산부 증권팀장 stels@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