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 학자, 정치인 등의 길을 걸어온 보수진영 원로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향년 94세)의 별세 소식에 5일 국민의힘 등 여권에서 추모 메시지와 조문이 잇따랐다.
유족에 따르면 김동길 명예교수는 전날(4일) 밤 10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는 김옥길기념관에 마련됐다.
이날 오후 예정된 일정을 소화 중이던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각각 추가 일정을 공지한 뒤 김 명예교수 조문에 나섰다. 오후 중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도 조문 행렬에 합류했고 윤석열 대통령의 근조 화환이 빈소에 놓였다.
5일 서울 서대문구 김옥길기념관에 마련된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 빈소에 윤석열 대통령의 조화(弔花)가 도착하고 있다.<공동취재·연합뉴스>
조문에 앞서 주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으로 고인을 추모하며 "교수님께서는 일생을 민주화와 지유민주주의 수호에 바치셨다"며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바른 길을 제시해주시던 교수님의 통찰력과 혜안은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가끔 찾아뵐 때면 귀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고 응원도 아끼지 않으셨다. 대접해주신 냉면 맛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개인적 인연을 부각하기도 했다.
일명 '제3지대'에서 보수진영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안철수 의원도 김 명예교수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담은 추모입장을 내고, 빈소를 조문했다. 옛 국민의당 대표 시절 지난해 4·2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 의원이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경선에 나섰을 때부터 김 명예교수는 그를 지지했다.
뿐만 아니라 안 의원이 3·9 대선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양당 합당 이후 국민의힘 소속으로 6·1 경기 성남분당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김 명예교수가 후원회장을 맡아 '버팀목' 역할을 했었다. 안 의원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대한민국이 잘 되기만을 바라셨던, 우리시대를 상징하는 지식인이셨다"고 기렸다.
그는 또 "교수님은 민주화운동으로 군부의 탄압을 받았지만 과거보단 나라의 앞 날을 걱정하셨고, 정치를 하면서도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평생 10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고, 시신마저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했다"며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무게가 있었고, 기발하면서도 사심 없이 나라를 위하셨던 교수님의 지성엔 시대를 앞선 세련됨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 3·9 대선 사전투표일에 앞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후보에게 후원회장으로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현 대통령)와의 야권후보 단일화를 촉구한 '보수 원로지식인'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유튜브 채널 '김동길TV' 영상 갈무리>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 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생전의 김 명예교수를 만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어젯밤 소식을 접하고는 먹먹함 그 자체였다. 선생님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정의, 용기'라는 단어로 압축되지 않을까"라며 "지금같이 혼란스런 이 때, 선생님의 준엄한 한마디가 그립다. '이게 뭡니까?'"라고 추념했다.
나 전 의원은 또 "나는 영광스럽게도 김 명예교수님께서 만드신 '냉면사랑모임'의 부회장을 김동건 아나운서 선생님과 함께 맡으며 선생님 댁의 고명이 없는 깨끗한 평양냉면, 빈대떡, 수육과 함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분들과 교류하기도 했다"며 "선거 때마다 꼭 유세로 지원해주셨던 선생님의 뜻도 늘 기억한다"고 인연을 강조했다.
같은 당 4선 중진의 윤상현 의원도 페이스북에 "한평생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며 바른 말씀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해온 선각자셨다"며 "링컨과 같은 정치인이 돼 국민을 위해 보다 차원 높은 정치를 하라고 하신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기렸다. 당일 빈소에 직접 조문도 했다.
초선 김미애 의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김 명예교수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내 기력이 있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 안 하면 용기가 없는 거지요", "이승만(초대대통령) 아니었으면 대한민국 없습니다. 공화국을 세운 건 (한반도) 5000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 등의 언급을 되새겼다.
탈북 고위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의원은 페이스북으로 "교수님의 고향은 평안남도 맹산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평생 헌신하신 교수님은 결국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교수님의 뜻을 이어 '담대한 자유와 민주의 물결이 한반도 곳곳에 펼쳐질 수 있도록' 헌신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5일 페이스북에 게재한 고(故)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추모글 갈무리.
한편 고인은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출생했다. 1946년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 각각 사학과 철학을 공부해 문사철(文史哲)을 섭렵했고 100권 안팎의 저서를 남겼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운동·현실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사회·정치 비판 목소리를 냈으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도 연루되며 대학에서 두 차례 해직됐었다.
이후 고인은 1991년 전대협 등 학생운동권이 주도한 노태우 정권 타도 결의대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폭력진압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씨 치사사건에 관해 '강씨를 배후조종해 죽게 만든 선배들은 내빼고 난 뒤 그를 다시 열사로 만들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직설을 했다가 학생들 반발에 강단을 떠났다.
이후 김 명예교수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하면서 정치권에 진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4년 신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고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했다. 그러나 15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나비 넥타이'와 '콧수염'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고인은 1980년대 정치평론을 하면서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말년에는 보수진영 원로이자 논객으로 활동했다. 지난해까지도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를 운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