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경색을 '김진태발(發) 금융위기'라고 규정하며 맹공하던 더불어민주당이 14일 강원도로 향했으나 도청 관계자들과 "고의 부도 책임론" 논쟁을 벌이는 데 그쳤다. 당내에서 김진태 강원도지사 형사고발을 시사한 지 일주일 가까이 됐지만 소득이 없어 보인다. 레고랜드 사업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 회생신청을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입장차가 첨예한데, 실제로 회생신청은 '예고'한 데 불과해 실태파악보다 정쟁이 앞섰단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김진태발 금융위기사태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종민 의원과 오기형(간사)·위성곤·이성만·이용우·허영 의원 등은 이날 오전 GJC와 강원도청을 차례로 방문해 관계자 면담 및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김진태 지사가 지방의회 의결 없이 GJC의 디폴트를 결정했다며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줘 '고의 부도'를 냈다고 주장했다. 도청에선 정광열 경제부지사, 윤인재 산업국장 등 관계자들이 '고의 부도' 주장에 반론을 폈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태발 금융위기사태 진상조사단' 소속 의원들이 14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을 방문해 정광열 경제부지사와 박병주 비서실장, 김용균 대변인 등 강원도 관계자들과 면담하고 있다.<연합뉴스>
앞서 김 지사는 지난 9월28일 도의 관리감독권을 벗어나있던 GJC를 회생신청해 부실을 파악하고 자산매각 등으로 채무를 벗어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GJC 측에서 발행한 2050억원어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주관사(BNK투자증권)에서 만기연장 없이 기한이익손실(EOD) 통보했고, 10월초 최종부도 처리된 뒤 김 지사가 도 예산으로 전액 조기상환한다고 급한 불을 껐다. 도 측은 선취이자 4개월분(38억원)을 내며 만기요청을 시도했었다는 입장이다.
김종민 진상조사단장은 "강원도와 BNK투자증권과의 계약서를 보면 회생신청을 할 경우 기한이익상실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다"고, 이용우 의원은 "조사단이 BNK투자증권으로부터 받은 공문을 보면 '강원도와 회생 절차와 관련해 공문으로 의견을 주고받은 일이 없다'고 답이 왔다"면서 도 책임을 물었다. BNK 측의 ABCP 부도 가능성을 알면서도 도가 회생신청을 예고했고, 사전 EOD 법률검토가 없었다면 문제삼을 수 있단 것이다.
진상조사단 측은 "강원도, 기획재정부하고 금융위원회가 김 지사를 비호한다는 메시지가 가면 시장도 금융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측 입장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 지사 형사고발 여부에 대해선 조사내용이 확정된 이후 문제라는 입장으로, 김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의에 "강원도와 금융시장에서 파악한 내용을 우선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조사단은 도청 방문에 앞서 GJC를 찾아 사실상 '우군'임을 드러냈다. 조사단에 따르면 송상익 GJC 대표이사는 간담회에서 "9월 28일 회생신청 발표를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면서 "회생 신청 발표 이후 정상적 경영활동이 마비된 상태"라고 했다. 김남균 GJC 경영기획본부장은 "회생신청이 계약서 상 기한이익상실사유"라면서 "기한이익상실 통보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 채권자의 권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원도 측은 현재 GJC 회생신청 계획을 발표했을 뿐, 신청 절차를 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서상 사유를 내세우는 건 무리하다는 입장이다. 회생신청을 원하지 않았다면 BNK 측에서 철회를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고 ABCP 부도 처리부터 했다는 취지다. 선취이자 지급사실도 반론 근거다. 김용균 강원도 대변인은 "4개월치 선취이자를 납부했고 BNK투자증권도 대출 만기연장이 합의를 한 것으로 이해를 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채무자 입장에서 선취이자를 납부했고 BNK투자증권도 이자를 받았으니 당연히 대출 만기가 연장된 것으로 봐야한다"며 "기업회생의 경우 법원에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 전, 즉 회생 개시 전에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라고 민주당 측을 반박했다. 그는 "계약서 조항에 '기업회생 개시 시 기한이익상실이 가능하다'는 내용은 현재 강원도가 가지고 있는 계약서 상에는 없다"고도 했다.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왼쪽) 강원도지사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레고랜드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가?'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날 김 지사는 오전 중 지역일정으로 부재중이어서 민주당 측과 대면하지 않았다. 다만 오후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강원연구원과 국민의힘 국회 정무위 소속 및 강원 출신 의원들이 공동주최한 '레고랜드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가?' 세미나에 참석해 방어 여론전을 이어갔다. 진상조사단 측은 김 지사의 면담 회피라면서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디폴트를 선언한적 없다'고 주장했다"고 비난했다.
한편 세미나 주최측으론 국민의힘 김희곤·송석준·유상범·이양수·한기호 의원·노용호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김병헌 한국관광진흥학회 회장과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이 각각 '레고랜드 유치의 명과 암', '최근 채권시장 경색, 레고랜드 회생신청 때문인가' 발제를 했다. 접근성·매력성·이미지·관광시설·하부구조 측면에서 사업성과 수익성이 낮은 레고랜드사업이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과'에 급급해 졸속 추진됐다거나, 기준금리 '빅스텝'속 채권수요 급감과 대거 만기 도래가 자금시장 불안 원인이란 지적이 나왔다.
뒤이은 종합토론에선 현진권 강원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은 가운데 김인영 한림대 부총장·유승각 강원연 연구위원·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실화범이 소방수를 탓한다"고 입 모았다. 최문순 전 강원지사(민주당 소속) 도정 11년간 레고랜드 사업 부실을 초래했는데 정작 김 지사에 정치공세가 집중되고 있다는 취지다. "레고랜드 MDA(총괄개발협약)는 멀린사에 매우 유리하게 체결됐다", "도의 GJC 채무보증은 충분한 타당성 검토를 거쳤나" "회생신청이 검찰 수사대상인가"란 지적도 나왔다.
국민의힘 강원도의회 측에서도 최문순 전 지사에 대한 고발 내용을 보강하면서 공세 수위를 높였다. 박기영 도의원은 앞서 최 전 지사가 레고랜드 사업 부실이 초래될 것을 알면서도 도의회에 알리지 않은 채 GJC 채무 2050억원 지급보증을 강행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가 있다며 강원경찰청에 고발했다. 박 도의원은 이날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최문순 도정이 굴지의 법무법인으로부터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조언을 받고도 사업을 강행했다'는 내용이 담긴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