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54기 가속모듈 중 전단부 5기로 10년만에 `빔 첫 인출` 결실

입력: 2022-11-20 11:55 이준기 기자

폰트

기자 구독

내년 3월까지 저에너지 全구간 빔 시운전… 2024년부터 제공키로
설비기술 100% 국산화… 고에너지 가속장치 구축 성공은 불투명

[르포] 54기 가속모듈 중 전단부 5기로 10년만에 `빔 첫 인출` 결실

중이온가속기 내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ISOL) 시스템이 구축된 공간으로, 가벼운 이온을 무거운 표적 원소에 충돌시켜 희귀한 동위원소를 생성한다.

대전 신동지구 '중이온가속기연구소'를 가다

지난 17일 대전 신동지구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저에너지가속장치(SCL3) 구역.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직사각형 모양의 초전도가속관이 줄지어 있었다. 총 54기의 가속모듈로 이뤄진 저에너지 초전도 가속장치는 주황색의 사극전자석과 복잡한 배선 및 센서로 연결돼 있었는데, 그 길이는 90m에 달했다.

저에너지 가속장치는 극저온 플랜트에서 영하 270도의 초전도 상태로 액체헬륨을 냉각시킨 후, 고주파 전력을 공급해 입사기에서 생성된 빔을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켜 다양한 실험장치로 보내는 핵심 설비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설비와 관련한 모든 기술을 국내 산업체와 함께 100% 국산화했다.

정연세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시스템통합부장은 "이곳에서 지난달 7일 아르곤 빔을 가속시켜 처음으로 빔을 인출하는 시험에 성공했다"며 "총 54기 전체 가속모듈 중 앞단에 위치한 5기의 가속모듈을 활용한 것으로, 빔 인출 성공으로 중이온가속기가 목표한 성능대로 작동하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이번 시험 성공에 대해 자동차로 치면 제작을 마치고 1단 기어로 저속 주행시험에 성공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중이온가속기는 양성자에서 우라늄까지 무거운 이온을 빠른 속도로 가속시켜 표적물질에 충돌시킴으로써 각종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해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에 활용하는 거대 과학연구시설이다. 저에너지 가속장치의 첫 빔 인출은 2011년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이 시작된 이후 네 번에 걸친 사업 기본계획 변경과 세 번의 사업단장 교체라는 우여곡절 끝에 이뤄낸 10년 만의 첫 결실이다.

홍승우 중이온가속기연구소장은 "중이온가속기는 양전하를 띤 입자가 저에너지 가속구간과 고에너지 가속구간을 통과하면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전기장을 만나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의 작용으로 빔을 가속시킨다"며 "가속된 빔은 실험장치가 있는 곳으로 공급돼 물질의 본질 이해부터 우주생성 원리 규명, 꿈의 신소재 개발, 생명현상 규명 및 암 치료 기술 연구 등 광범위한 기초과학 분야 연구에 활용된다"고 말했다.

첫 빔을 인출한 저에너지 초전도 가속구간 전단부를 지나자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ISOL) 구역이 등장했다. 이 곳은 가벼운 이온을 빛의 속도의 50% 수준까지 가속해 무거운 원소 표적에 충돌시킨다. 그 결과 표적이 쪼개지면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한다. 여기에 무거운 원소 이온을 가속해 가벼운 원소 표적과 재충돌시킴으로써 더욱 희귀한 동위원소를 생성하는 IF 방식을 결합해 운영되는 세계 최초의 가속기 시설이다.

중이온가속기는 ISOL과 IF 방식을 결합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6곳의 중이온가속기에 비해 새로운 희귀동위원소 발견 가능성이 높고, 이를 통해 다양한 희귀동위원소 빔을 공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췄다. 현재는 고에너지 가속장치를 제외하고, 저에너지 구간의 주요 장치 제작과 설치, 장치 시운전이 끝났다. ISOL 시스템과 싸이클로트론, 되튐분광장치(KoBRA), 질량측정장치(MMS) 등 희귀동위원소 생성·공급 장치와 주요 실험장치 구축도 완료됐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저에너지 가속구간에 대한 빔 시운전을 점점 늘려 내년 3월까지 전 구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어 2024년부터 저에너지 가속구간에서 생성된 빔을 이용자에 제공할 계획이다.

다만, 가속장치 제작과 성능 미확보 등 기술적 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고에너지 가속장치(SCL2) 구축 시기와 성공 여부는 아직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중이온가속기 최종 완성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는 고에너지 가속장치 필수 요소기술을 개발·검증하고, 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선행 R&D를 2025년까지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처음 시도해 보는 고에너지 가속장치 성능과 제작, 시운전 성공 여부에 향후 사업 성패가 달려 있다.

고에너지 가속장치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쳐도 빔 인출과 실제 공급까지는 추가 3∼4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0억원의 추가적인 예산 확보도 필요해 중이온가속기의 완벽한 가동까지는 시간과 비용이 더 들 전망이다.

권면 중이온가속기사업단장은 "첫 빔 인출을 계기로 저에너지 가속장치의 구축 단계를 넘어 성능 확인 단계로 돌입했고, 가속장치 성능뿐 아니라 필수 기반장치와 연계한 성능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내년 3월까지 저에너지 전체 구간에 대한 빔 시운전을 마치고, 고에너지 가속구간에 적용할 초전도 가속장치 개발과 성능 검증도 차질 없이 이뤄지면 중이온가속기 사업은 완성을 향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이온가속기는 대전 신동지구에 연면적 11만6252㎡ 규모로 총 1조5183억원을 투입해 구축하는 사업으로 '단군 이래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로 꼽힌다.

글·사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