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송혜교 복수` 3월까지 기다리라고? 이용자 애태우는 파트제

입력: 2023-01-10 09:03 김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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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김은숙·'비밀의숲' 안길호 뭉쳐
송혜교 등 배우들 흡입력있는 연기 압권
3일만에 글로벌 톱3…9일 기준 전체 6위
한 시즌 두개로 쪼갠 파트제 채택도 눈길
장르·포맷에 따라 캐릭터와의 교감 시도
파친코·카지노 등 한번에 3회 우선 공개
넷플릭스 가입자 이탈방지 등 전략 접근

[김나인의 `樂樂한 콘텐츠`] `송혜교 복수` 3월까지 기다리라고? 이용자 애태우는 파트제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회사원 A(33)씨는 최근 주말 내내 밤을 새서 주변에서 입소문이 난 '더 글로리'를 정주행했다. A씨는 "더 글로리의 소재와 연출이 흡입력이 있어 주말 내내 1화부터 8화까지 연달아 몰아봤다"며 "3월에 파트2가 공개된다는데 어떻게 기다리나. 더 글로리를 보려고 넷플릭스 구독을 신청했는데 파트2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시작할 걸 후회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에서 전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한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총 16편인 더 글로리를 파트 1·2로 나눠 1회부터 8회까지만 공개하면서, 나머지 회차를 기다리는 이용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주인공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파트2는 3월 중 공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용자들이 "못 기다리겠다", "당장 공개하라"는 반응을 보이며 파트2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학교 폭력 피해를 입은 주인공이 가해자에게 치밀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등으로 탄탄한 입지를 쌓은 김은숙 작가의 필력과, '비밀의 숲' 등 장르물에서 존재감을 보인 안길호 감독의 연출, 배우 송혜교와 주·조연 배우들의 흡입력 있는 연기가 드라마의 몰입도를 끌어냈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실제 더 글로리는 첫 공개 후 3일 만에 2541만 시청 시간을 기록해 넷플릭스 TV부문(비영어) 글로벌 톱 3위로 단숨에 올라섰다.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9일 기준 더 글로리는 넷플릭스 세계 6위를 기록했다.

더 글로리의 인기로 관심을 모은 것은 넷플릭스의 콘텐츠 공개 방식이다. 등장 초반 '몰아보기'로 승부수를 던지던 넷플릭스 콘텐츠 공개 공식이 OTT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다양화되고 있다.

시즌제에 이어 더 글로리와 같이 한 시즌을 두 개로 쪼개 공개하는 파트제를 채택하거나 일반 텔레비전 프로그램처럼 매주 순차 공개하는 콘텐츠도 선보였다. 작품의 장르나 포맷에 따라 공개 방식을 다르게 하는 식이다.

더 글로리와 같은 파트별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오리지널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시즌4를 더 글로리와 같이 두 개 파트로 나눠 순차 공개했다.

최근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는 기묘한 이야기 시즌4에 대해 "파트2가 공개되는 동안 기묘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청자들이 대화를 이어가고 넷플릭스 브랜드에 대한 열정이 높아지는 등 마케팅 전략의 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묘한 이야기는 시즌4 전 에피소드를 공개한 후 시청 10억 시간을 돌파하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인 '범인은 바로 너'와 '솔로지옥'의 경우 순차 공개 방식을 택했다.

콘텐츠 업계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시도에 대해 "작품 공개 방식은 창작자와 콘텐츠팀이 함께 어떻게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 적합한지 논의해 채택한다"며 "장르나 포맷에 따라 순차 공개를 통해 몇주, 몇 달에 걸쳐 캐릭터와 교감하도록 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즌제의 경우 다음 시즌이 나올 때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파트별 공개는 길어야 몇 달 정도 소요된다. 일단 제작한 콘텐츠를 선공개하고 후반 작업이 필요한 경우 순차 공개나 파트별 공개를 통해 시간을 벌어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다음 파트가 공개될 때까지 소비자의 이탈을 방지하는 '록인효과(소비자들을 묶어 놓는 것)'를 누릴 수도 있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국내외 OTT 후발주자들도 다양한 콘텐츠 공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애플TV플러스의 경우 8부작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파친코'를 1회부터 3회까지만 한 번에 공개하고, 4회부터는 매주 한 편씩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디즈니플러스 역시 최민식·손석구 주연 '카지노' 시즌 1을 3회까지 선공개했다. 반면, 대다수 오리지널 콘텐츠를 순차 공개하던 방식을 택했던 웨이브는 히트작인 '약한 영웅'의 경우 8회를 동시 공개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시도가 항상 시청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 대해 더 글로리와 같은 공개 방식을 택했지만, 5개월이 지나 공개된 파트2는 파트1에 비해 누적 시청 시간과 화제성 면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OTT 공개 방식의 다변화의 근본적 원인은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와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OTT 가입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진화 방식 중 하나라는 것. 출범 초반 넷플릭스는 지상파, 케이블TV 등 기존 전통 매체와 차별화하기 위해 '전편 동시 공개' 방식을 채택해 '몰아보기'라는 콘텐츠 시청 행태를 선도했다.

이후 디즈니플러스, HBO 맥스, 피콕 등 다양한 OTT 사업자가 등장하면서 경쟁이 격화됐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인사이더인텔리전스 분석에 따르면, 2025~2026년 넷플릭스의 연간 성장률은 1.6%까지 떨어지는 정체기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OTT 제공업체가 늘어나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지면서 2~3개 이상의 OTT를 동시에 가입하고 콘텐츠에 따라 OTT 서비스를 바꿔보는 'OTT 노마드족'이 늘어나는 것도 콘텐츠 공개 전략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KISDI(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시청자들이 두 개 이상의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13.9%에 달한다. 이 중 20대가 42.2%로 압도적으로 높다. 다양한 OTT 플랫폼과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취향과 킬러 콘텐츠 유무에 따라 OTT를 옮겨 다니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춤했던 외부 여가 활동이 거리두기, 실외 마스크 해제 등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것도 OTT의 위기 요인 중 하나다. '2022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OTT 시청은 지난해 8.5%로 전년(10.6%)보다 줄어들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시장 초기에는 OTT 특성을 부각하기 위해 콘텐츠 일괄 출시 전략을 채택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입자 이탈 방지가 중요해졌다"며 "기업들이 IP(지식재산권)나 콘텐츠 소비 한계, 투자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다양한 공개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