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와 닮은꼴이다. 경제에선 바이든이 더 국수주의적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제도화한 건 바이든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트럼프의 말폭탄 허세보다 '젠틀 맨' 바이든이 더 무서운 이유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에 이어 바이오까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만들겠다는 바이든의 의지는 확고하다. 미국의 첨단기업 인수·합병(M&A)에 장벽까지 쌓았다. 2018년 7월 중국산 제품 2200여개에 관세폭탄으로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했던 트럼프보다 더 노골적이다. 중국 견제와 봉쇄가 명분이지만 충격파가 동맹국들에도 미친다.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바이오 행정명령에 동맹국들이 숨을 죽여야 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의 신규투자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에 사실상 투자할 수 없다. 전기차의 미국 생산 등 규정을 충족해야만 대당 7500달러(약 926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보조금 차별 해소를 위해 정부가 백방으로 뛰지만 아직도 해결 기미가 없다.
당장 우리 기업은 비상이 걸렸다. 미국 시장서 점유율 2위까지 올랐던 현대차 아니오닉5와 기아차 EV6는 전량 국내에서 생산해 보조금을 못 받는다. 그만큼 경쟁에서 불리하다. 배터리 조항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전기차에는 치명적이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보조금 수혜 대상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자칫 중국 공장시설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제동이 걸릴 수 있어서다. 그나마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한 미 정부가 1년 예외 인정을 해줘 한시름 놓은 상황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만에 하나 첨단 장비 수출을 금지하면 중국 공장은 무용지물이다.
더 우려되는 건 미국의 첨단 기술기업 M&A에 대한 외국인 투자심사를 강화한 행정명령이다. 중국 관련 기업이 대상에 포함돼서다. 말이 심사지 사실상 허가제나 다름 없다. 기업들이 웬만한 글로벌 사업을 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할 판이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제재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중국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긴장하는 이유다.
미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중국의 패권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첨단 미래 먹거리를 모두 '메이드 인 아메리카'로 만들어 글로벌 기술패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자유무역주의는 허울 뿐이다. 미국의 국익 앞에 동맹의 가치는 힘을 잃는다. 동맹의 이익은 뒷전이다.
IRA가 한미 FTA 호혜조항 위반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105억 달러 미국 투자를 약속한 정의선 현대차 기아 회장에게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던 바이든이 뒤통수를 친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연일 치고받는 민주당과 공화당도 국익 앞에선 똘똘 뭉친다. 그게 미국의 힘이다.
곳곳이 지뢰밭이다. 마땅한 해법은 없다. 슈퍼파워 미국과 등질 수는 없다. 외교 수완을 발휘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소통채널을 넓히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중국 장비 수출 1년 유예를 받아낸 것처럼 사전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IRA 사태의 우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미국의 가치동맹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은 기본이다. 멀리 보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변변한 물밑 채널조차 없는 겉도는 외교로 "워싱턴에 한국은 없다"는 얘기가 더 이상 나와선 안된다.
1970년대부터 다양한 채널을 만든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과의 갈등 사안은 동맹국들과의 공조로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국도 어쩔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도체 등 전략산업 육성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사사건건 진영논리로 발목을 잡는 거대 야당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부국장 겸 정치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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