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에서 이른바 '사기성 코인'으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이 다른 거래소들과 협의없이 상장폐지(상폐)된 암호화폐 위믹스의 재상장을 단독으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아직 업권법이 마련되지 않아 현행 자본시장법으로 처벌하기에는 법리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이다. 그 사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결국 개인 투자자들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5월 일주일 만에 57조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하며 전 세계 코인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미국에서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테라 루나의 증권 사기 혐의를 적용하는 데 최대 관건으로 꼽히는 증권성 여부가 입증되면 최근 '상폐 논란'을 겪은 위믹스 코인도 증권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당국, 권도형 대표 사기 혐의로 기소=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테라폼랩스(Terraform Labs)와 권도형 대표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자산 관련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시장은 테라-루나 시스템을 증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SEC는 2018년 4월부터 권 대표가 토큰 가치가 상승 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이익을 얻으려는 투자자에게 암호화 자산 증권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테라USD(UST)를 '수익률을 지니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선전하고 마케팅했으며, 가상자산 예치 플랫폼인 앵커 프로토콜을 통해 최대 연 20%의 이자를 지불할 것으로 광고했다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투자자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모금했는데 이 중 다수는 등록되지 않은 증권이며 테라-루나 시스템의 위험성을 오도하고 투자자들을 속인 것으로 판단했다.
스테이블 코인인 UST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매 코인 루나(LUNA)는 한때 시가총액 80조원으로 전 세계 코인 10위권 이내에 들기도 했으나 지난해 5월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이 고정 가치에서 이탈하는 현상인 '언페깅'(unpegging)이 발생, 가치가 99%(57조원) 이상 폭락하며 사실상 휴짓조각이 된 바 있다.
미 금융당국은 현재 글로벌 1위 가상자산거래소인 바이낸스의 스테이블코인(BUSD)의 발행을 중단하고 미국 2위 거래소 크라켄의 스테이킹(가상자산 예치)에 대해 기소와 범칙금 3000만달러를 물린 상태다. 두 기업에 적용한 혐의 모두 투자자 보호법 위반이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코인 시장도 기존 금융산업에 해당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 규제에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셈이다. 만약 미 당국에서 이를 증권으로 인정하면 국내에서도 자본시장법 위반을 적용하며 국내 수사도 급물살을 탈 수 있게 된다.
◇위믹스에 면죄부 준 코인원…커지는 위믹스 증권성 논란= 코인원은 가장자산 거래 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출범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와 사전 교감 없이 단독으로 지난 16일 위믹스를 재상장했다. 위믹스는 게임업체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하는 가상화폐로, 지난해 12월 유통량 공시 위반, 정보 제공 및 신뢰 훼손 등 문제로 닥사 차원에서 공동으로 상장 폐지됐다. 닥사는 당시 위믹스 유통량이 위메이드가 공표한 숫자와 7245만4705위믹스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유통량을 속였다는 주장이다. 당시 시가로는 수천억원 규모로 전해졌다.
코인원은 가상화폐 국내 상장을 두고 뒷돈을 주고받은 직원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이승형 부장검사)는 지난 13일 브로커 고모 씨와 가상화폐거래소 코인원 관계자 전모 씨에게 각각 배임증재·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0년 가상화폐거래소 코인원에 가상화폐를 상장해달라는 청탁과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는다. 고씨가 청탁한 가상화폐는 코인원에 정식 상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남부지검은 가상화폐 시세조종, 발행사와 거래소의 유착 관계 등 가상화폐거래소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코인원 상장을 둘러싼 비리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다.
테라·루나의 자본시장법 적용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다른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국내 금융당국은 최근 토큰증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지난해 4월 조각투자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기본원칙이 토큰증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다. 증권인지 여부를 개별 사안별로 판단하게 되며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에 거래되는 가상자산 가운데서도 증권 성격이 있다면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아 거래가 중단된다. 당국은 뮤직카우에 △투자자가 공동 사업에 금전 등 투자 △타인이 수행한 공동 사업의 결과에 따라 투자 수익 획득 △이익을 획득하려는 목적에 부합할 경우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블록체인거버넌스위원회(BGCC)에서 2020년 이후 업비트, 빗썸 등 5대 원화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나 토큰들의 증권성 여부를 판단한 결과, 이들이 투자계약 증권으로서의 '증권형'이거나 일부는 자본시장법상 '수익증권'에 해당될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가령 특정 코인이 증권형일 경우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발행과 공개(ICO)가 이루어져야 하며, 자본시장법에서 벗어난 상장과 거래는 곧 '공모'에 해당돼 자본시장법 위반이 된다.
앞서 위믹스는 지난해 상폐전부터 증권성 논란이 불거졌었다. 지난해 5월 디지털금융 전문가로 알려진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가 "위믹스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해 자본시장법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민원을 금융위원회에 제기하면서다. 당시에는 당국이 증권형 코인 선별 기준이 전제돼야 위믹스 증권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으나 올해 토큰 증권(ST)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마련하면서 본격적인 검토가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본시장법 제4조 6항에 의한 '투자계약증권'에 따르면 주관자 재단이 존재하고 재단이 제시한 공동 사업 추진결과를 보고 투자자들이 투자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할 경우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 금융위 측은 증권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대한 예시를 △'사업 운영에 대한 지분권을 갖거나 사업의 운영성과에 따른 배당권 또는 잔여재산에 대한 분배청구권을 갖게 되는 경우'와 △'발행인이 투자자에게 사업 성과에 따라 발생한 수익을 귀속시키는 경우' 등으로 설명했다. 또 투자자에게 지급되는 금전등이 형식적으로는 투자자 활동의 대가 형태를 가지더라도, 실질적으로 사업 수익을 분배하는 것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증권에 해당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를 위믹스에 적용할 경우, 위메이드 게임 유저가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받은 토큰을 위믹스 플랫폼에서 거래 및 교환·전송할 수 있고, 이를 위믹스 토큰으로 바꾼 뒤 거래소에서 매매해 현금화할 수 있어 투자자가 공동 사업에 금전 등 투자 및 타인이 수행한 공동 사업의 결과에 따라 투자 수익·이익을 획득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아직 증권성 판단을 거래소 자율규제에 맡기고 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SEC가 9종의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분류,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해당 코인들을 퇴출시켰다. 미국에서는 하위테스트(Howey test)를 통해 △금전의 투자 △공동의 사업 △투자에 따른 수익 기대 △제3자에 의한 수익발생 증권 여부 등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증권으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라 지난 2020년 12월 당시 세계 3위 코인인 리플사의 XRP를 증권형으로 규정, 발행사와 공동 창업자들을 연방법원에 제소한 이후 현재까지 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위믹스 코인이 향후 증권성을 인정받을 경우 재차 상장폐지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유리 변호사는 "토큰 증권 규율방안 발표를 통해 당국은 가상자산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증권성이 있다면 제재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향후 증권성이 있다고 판명될 경우 일부 가상자산은 퇴출될 수 있으므로 재단 운영자들을 비롯한 투자자들 모두 개별 프로젝트의 실질을 고려해 증권성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신하연기자 summer@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