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고 불리는 '핵심광물원자재법(CRMA)' 초안을 내달 14일 공개한다. CRMA의 경우 폐배터리 재활용을 중심으로 친환경과 자국 산업 보호 기조가 동시에 담길 것이 유력한 만큼, 현지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업체에 어떤 불똥이 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6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내달 14일 CRMA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리튬, 희토류, 팔라듐 등 원자재의 중국,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만큼 공급망 안정화를 최우선 가치로 역내 핵심 원자재 조달 비율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EU 내에서 생산된 원자재를 사용한 제품에만 세액공제와 보조금 혜택을 주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또 전기차 배터리 생산시 폐배터리 재활용 방식으로 추출한 원자재가 일정 비율이 포함되도록 의무화하는 조치 역시 유력하다.
앞서 EU 집행위는 지난해 이해관계자들의 공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는데, 유럽충전식리튬배터리산업협회는 이에 역내 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구축을 요청했다. 유럽재활용산업협회는 주요 원자재에 대한 유럽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순환경제 원칙을 강조하며, 생산자책임(EPR) 수수료 도입을 요구했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폐배터리 재활용 의무 비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LG엔솔 등 배터리 3사는 근본적인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폐배터리 체계를 추진해왔지만, CRMA에 세부 규정에 따라 유럽 내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의 전략을 빠르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광물 확보 자체가 부담이고, 원재료 비용이 올라가다 보니 폐배터리 재활용은 가야하는 길이지만, 유럽은 환경 기준이 높다 보니 구체적인 비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기회요소도 있지만, 우리 역시 현지 공급망 비중을 높여야 하는 만큼 부담도 크다"고 했다.
무엇보다 배터리 업계는 미국의 IRA와 EU의 CRMA 모두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나온 법안인 만큼,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 업체가 충족하기 어려운 무리한 조항을 넣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EU가 권역 외 소재 공급 비율을 높여 잡을 경우 중국 소재의 비중을 줄여야 하는데, 중국 업체들이 이에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에 배터리 3사는 현지에 있는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업체와의 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폐배터리 재활용은 폐배터리 수거부터 과정이 복잡하고, 원소재 회수 기술도 필요하기 때문에 단독으로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현재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은 벨기에 유미코어, 중국 화우코발트, 거린메이, 닝보브룬프 CATL, 성일하이텍인데 중국 3사를 제외하면 CRMA의 대안은 유미코어와 성일하이텍뿐이다.
성일하이텍은 헝가리와 폴란드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이미 두고 있는데다 2024년 독일, 2025년 스페인에 각각 전처리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SDI는 성일하이텍 지분 8.79%를 보유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은 성일하이텍과 국내에 재활용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특별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