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은 위기겪으면서 세련됐지만 정치·사회적 굴레탓에 앞으로 못나가
中, 우릴 못 건드리는 건 반도체때문… 원천기술 갖도록 정책틀 바꿔야
AI진화 우려스럽지만 '운명적 경로'… 가치형 인간 50만이면 세상 바꿔
中, 우릴 못 건드리는 건 반도체때문… 원천기술 갖도록 정책틀 바꿔야
AI진화 우려스럽지만 '운명적 경로'… 가치형 인간 50만이면 세상 바꿔
![[창간 인터뷰] "대한민국 새벽 3시 어둠같아… 선진국 도약 출발점은 개헌"](http://contents.dt.co.kr/images/202303/2023030302100551038002[1].jpg "[창간 인터뷰] \"대한민국 새벽 3시 어둠같아… 선진국 도약 출발점은 개헌\"")
박동욱기자 fufus@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한국이 선진도상국(先進途上國)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우선 내부 갈등부터 용광로처럼 녹여야 한다. 증폭된 이념·세대 간 분열을 해결하지 않고선 내부 역량을 도약의 에너지로 이끌어낼 수 없어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후 10개월 가까이 지났어도 분열은 계속되고 있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여야 정치권은 서로를 향해 증오의 언어를 쏟아내며,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이를 포퓰리즘에 악용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선택지는 좁아지고 있다. 경제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정덕구 NEAR재단(North East Asia Foundation) 이사장(75)은 초고속 압축성장이 잉태한 우리 사회의 이중 구조와 분열을 쾌도난마식으로 풀어낼 해법을 찾기 위해 국가원로들과 머리를 맞대왔다. 산업자원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내고 민간 독립 싱크탱크인 니어재단을 운영하는 그는 "민간 부분이 정치·사회 비용이라는 족쇄에 묶여 못 나가고 있다"며 "이런 비용을 떨치려면 정치 사회 개혁을 해야 한다. 결국 개헌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을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사임당로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 = 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 현재 2023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갈등은 무엇인가요.
"자기 이익추구형 갈등입니다. 일종의 기득권을 놓치면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죠. 갈등의 씨앗은 역사관에 대한 양극단화에서 비롯됐어요. 심지어 교과서도 정리가 안됐습니다. 이것이 경제 발전 과정에 오면서 건곤일척 투쟁의 장으로 들어왔어요. 압축성장 열차가 달리면서 열차에 탄 사람과 못 탄 사람이 갈리고, 국가 사회적인 이중구조가 생겼습니다. 창조적 소수의 성공으로 국가의 역량은 확대되지만 비창조적 다수는 더욱 뒤처지는 거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투쟁에 의해 쟁취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이익집단화에 대한 갈등을 풀어주는 역할을 정치권이 해야 하나요.
"정치가 지난 60년 동안 고도화 성장과정에서 뒤처진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했어야 해요. 그때 발생한 문제를 치유하지 않고 오래 방치해왔죠. 군부 통치하에서는 (경제 성장) 하나에 치중하느라 못했습니다. 문제는 '87년 체제'로 넘어온 후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입니다. 이 사람들의 시대적 소명은 국가 사회의 이중구조 형성, 박정희식 개발 모형에서 해내지 못한 그 어두운 부분을 해결했어야 해요. 사회적 약자가 범람하는 사회의 이중구조문제를 극복하는 일이죠. 정권을 잡는 데만 욕심을 부렸어요. 사회의 어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전혀 손을 대지 않았어요. 포퓰리즘에 빠져서 자기 편을 만들기 위해 '설탕 바른 마약'을 먹이며 분노를 조장하는 데만 열중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말리는 사람이 없었죠."
-그 세력들이 역사적 트랙이라든가 글로벌 흐름을 볼 수 있는 실력이 없어서 그랬나요
"386세대는 완전히 어른이 되기 전 정권을 잡았어요. 학습과 경륜이 부족했죠. 자기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권력을 안놓는 데만 치중했어요. 박정희식 개발 모형에서 발생된 부산물들과 실패 요인들을 치유하고, 비창조적 다수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못한 거죠."
-이런 한계가 노정되면서 문재인 정부로 갔던 열망이 윤석열 정부로 옮겨온 것 같네요. 최근 정부는 연금·노동·교육 개혁의 어젠다를 내세웠는데 바람직한 방안이 있나요.
"대한민국은 사회제도나 공공부문이 총체적으로 무너졌어요. 어느 하나만으로 해결되진 않아요. 예를 들면 교육과 노동은 불가분의 관계죠. 미래의 안심 설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연금이에요. 당초 추정보다 엄청난 예측 오차가 있었어요. 노인이 이렇게 빨리 늘어날 지 알 수 없었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연금개혁을 하기 위해 사회적 함의를 이끌 리더십이 필요하고 이를 최종 확인하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러야 해요. 의회도 장악해야 하고요. 지금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연금 개혁을 하잖아요. 이것은 자신의 정치적인 파워 베이스를 흔드는 일이에요. 이 점을 각오하지 않으면 못해요. 대통령이 어느 정도 결심할 것인지에 따라 승패가 달라질 수 있어요."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현재 상태에선 합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요.
"정치적 합의도 어렵습니다. 현재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자가 돼버렸기 때문이죠. 이 기득권자의 밥그릇을, 이익을 뺏어야 해서 쉽지 않은 거에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도는 더욱 어렵죠. 국민적 논의가 이뤄지고 좋은 방안이 나와도 쉽지 않아요. 국민의 생존문제가 달려있으니 복잡한 문제에요."
-한국이 선진국으로 본격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지난해 포럼에서 개헌과 내각제도 주창하셨죠.
"정치개혁 밖에 없어요. 민간 부문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10년 글로벌 위기 이후 많이 세련돼졌어요. 지금 정치·사회적 굴레 때문에 민간 부분이 앞으로 못나가고 있어요. 민간 부문엔 정치·사회 비용이라는 족쇄가 쳐져 있죠. 이런 비용을 떨치려면 정치 사회 개혁을 해야 되요. 결국 개헌이 그 출발점입니다."
-정치 개혁의 요체가 개헌인가요.
"개혁은 정치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일이죠. 지금 상태로 대한민국은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우수해서 잘 견디고 있는 거에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자기를 위해 정치하는 사람들이죠.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으로 가려면 정치권의 인물생태계를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 정당법·선거법·국회법을 모두 바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어요. 정치 생태계의 변화는 모든 정치인이 나라를 위해 정치 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는 것이에요."
-최근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데, 우리나라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요.
"중국과 한국은 역사적·지정학적으로 연결된 나라죠. 한국은 그 사람들(중국)이 추구하는 질서대로 살지 않고, 그들 적(미국)의 질서대로 살아가면 우리의 생존방정식을 형성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우리가 1980년대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호황을 구가하고, 2010년 이후 글로벌 위기를 극복한 것도 중국의 파워 덕분이었습니다. 중국에 파이프를 박고 물을 받아서 견딘 것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시진핑 체제 이후 보완적 생존관계에 금이 가고 정체성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과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습니다. 한미 동맹은 우리의 대체 불가능한 동맹이고, 주한미군은 국가안보의 최첨병입니다. 일종의 숙명이죠. 미-중 관계가 순항하면 한국 외교 안보도 순항하고,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 딜레마에 빠지죠. 할 수 없이 미국과 동맹하고, 중국과는 어떻게 하든 공존할 수 밖에 없어요."
-세계 무역 구조가 자유 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바뀌는데, 우리 나라는 어떤 경제정책을 펴야 할까요.
"산업 정책의 틀을 바꿔야 해요. 중국이 한국을 미워도 못 건드리는 이유는 반도체 때문이에요. 우리는 범용성 제품보다는 핵심 틈새, 원천 기술을 가진 필수 국가가 되야죠. 중국이 우리 물건이 없으면 나라가 굴러가지 않을 정도여야 해요. 우리는 그런 물건이 적어요. 범용성 수출 물품은 중국하고 경쟁이 안되요. 우리는 10개 정도 필수 품목으로 돈을 벌어 나머지 국민들이 먹고 사는 구조에요."
-산업 정책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산업자원부 장관 시기에 했던 게 부품소재산업 육성이에요. 돈을 퍼부어 전자부품 연구소, 자동차 부품 연구소를 만들었어요. 보조금도 7대 3 비율로 부품소재 산업에 투입했어요. 그래서 2010년 글로벌 경제 위기때 중국이 4조위안 특별 부양책을 쓸 때 우리나라 부품소재 제품을 수입했어요.
부품산업육성법을 중심으로 많은 것을 만들었어요. 부품소재 산업을 기반으로 중견기업도 육성했죠. 옛날에는 조립산업 몇 개만 있어서 골다공증 환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산업의 숲이 생겼어요. 그 숲 때문에 제조업이 강국이 된 것이에요."
-최근 AI(인공지능)나 챗GPT얘기는 들어보셨죠.
"한국은 지금 AI의 기술 확보를 위한 과정에 있어요. 아직은 미국과 중국한테 뒤쳐져 있어요. 한국에서 바이오케미칼, 바이오케미칼 하는데 백신 같은 거 못만들잖아요. 그 백신을 대량 제조만 하고 있죠. 선진국이 돼도 최첨단 선진국에서 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걸기는 어렵죠. AI 일부 핵심 기술의 대표 강국을 지향해야지, AI 전체기술의 왕국으로 가긴 어려워요."
-챗 GPT 같은 AI(인공지능)가 공무원 3분의 1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드세요.
"노동집약적 산업에는 타격이 주니까 이런 구조를 가진 나라에겐 타격을 주겠죠. 그 인력은 AI리서치 부분에 일부 흡수되고, 전후방 연관부문의 인력 수요를 늘릴 겁니다. 인력의 공급 기지인 교육 부문의 일대 개혁이 필요해요. 다만 그 분야에 적응하는 사람은 창조적 소수가 되고, 적응하지 못하면 비창조적 다수가 되죠. 교육이 비창조적 다수의 수를 줄이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같은 현상 속에 있어요. 세계적인 석학이나 전문가들은 AI의 진화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어요. 인류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AI에 관련된 많은 틈새 기술이나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도 있어요. 결국 우리나라는 이 트랜드, 디지털 컨버젼스 추세에 맞추지 않으면 안되죠. 저는 이걸 경제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운명적 경로'라고 합니다."
-경제관료와 정치, 민간연구재단 일을 하시면서 회고를 한다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외국 싱크탱크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 때 보니 외국 싱크탱크들이 엄청난 숲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한국의 문제를 다루는 수십 명이 연구소에 있었어요. 막상 우리는 한국을 연구하는 곳이 없었죠. 전부 외국 것만 참고하는 수준이지요. 외교 안보 또는 국립연구원은 외교적 이슈를 5페이지짜리 보고서만 만들고 끝이에요. 이런 역할을 학교가 해야 하는 데 학교는 90%가 생존형 사회로 전락하고 있어요. 월급은 조금 주고 연구는 많이 하라고 하기 때문이죠. 현실이 이렇다 보니 (교수가) 연구비를 따기 위해 뛰어야 하니까 자신이 가진 치를 잃어버리는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할 무렵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열린음악회'에 저와 다른 장관 부부를 초대했어요. 당시 아나운서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신 장관님들을 모시겠다'고 소개를 하는 거에요. 당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대한민국 경제라는 배를 가르고 우선 급한 종양만 떼어내고 덮었기 때문이었죠. 그 때 엄청난 부채의식을 느꼈어요. 싱크탱크를 창립하게 된거죠."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대한민국은 새벽 3시의 어두움과 같다'. 곧 밝은 날이 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용기와 인내심을 갖고 고치려고 해야 되요. 그럴 때 최소 1% 이상의 가치형 인간, 50만명의 가치형 인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50만명의 가치형 국민을 얻으려면 이제 몇 년 걸릴까요. 혹자는 20∼30년 걸린다고 합니다."
정리=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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