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암호보안 기술은 장기간 꾸준한 투자가 필수입니다. 연구개발부터 표준화까지 긴 호흡으로 투자해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최근 연구실에서 만난 김승주(사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블록체인, NFT(대체불가토큰), 생성형AI(인공지능) 등 이슈가 뜰 때마다 편승하는 정부 정책과 기업 전략에 대해 "단기간 유행을 따라가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직격했다. 김 교수는 KISA(한국인터넷진흥원) 팀장, 대검찰청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보보호 전문가다.
그는 "20여년 전 KISA에서 근무할 당시 암호기술 관련 조직의 예산과 인원이 가장 많았는데 해킹 이슈가 부각되면서 관련 기관에서 암호팀이 축소됐거나 사라졌다. 이후 블록체인이 뜨니 다시 암호에 대해 관심을 가지더라"며 "그때 꾸준히 암호기술에 투자했다면 블록체인이나 양자암호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고 현재 심각한 기술인력 해외유출 문제도 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생성형 AI 유행도 또 다른 '쏠림현상'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미래 기술은 10년 이상 길게 봐야 하는데 국가전략기술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은 문제"라며 "전체 인터넷 인프라를 중장기적으로 바꿔가야 하는 만큼 양자암호보안을 단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성능이 수억배 뛰어난 양자컴퓨터는 산업 전반의 미래 헤게모니를 좌우할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우리 정부도 올해를 '양자과학기술 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미국, 유럽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 선도국 수준의 기술과 산업화 역량 확보를 위해 최근 1조원 규모의 R&D 프로젝트 예비타당성 조사도 신청했다. 미국, 중국, EU(유럽연합) 등은 일찌감치 투자에 나서 이 분야를 이끌고 있다. 특히 IBM을 앞세운 미국이 선두에 있다. IBM은 지난 2021년 127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공개한 데 이어 올해 1121큐비트 수준까지 성능을 높일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에 비해 최소 10년 가량 뒤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교수는 양자컴퓨팅에 대한 투자와 대응 보안체계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우 큰 숫자는 소인수분해가 어렵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현재의 공개키 방식 'RSA 암호체계'는 양자컴퓨터를 통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대비해 양자컴퓨팅 시대에 맞는 암호보안 기술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양자컴퓨터로도 푸는데 수십억년이 걸리는 복잡한 수학적 알고리즘을 적용한 PQC(양자내성암호)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양자컴퓨터에 대비해 이미 PQC 암호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다"며 "보안성이 매우 높아 주로 군사용으로 개발하는 QKD(양자키분배)와 달리 PQC는 통신, 전자서명, 인터넷뱅킹 등 응용 분야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 NIST(국립표준기술연구소)가 양자내성암호를 표준 알고리즘으로 발표하면서 연방 기관의 암호 시스템도 PQC로 전환되는 추세다. 이와 달리 QKD는 양자의 물리적 특성을 통해 암호키를 교환하는 기술로, 보안성이 높지만 별도의 양자키분배장치, 양자키분배채널 등 하드웨어 기술이 필요해 범용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가 PQC 기술을 보유했다.
김 교수는 "양자암호보안은 F1의 스포츠카 같은 기술로, 일반인이 체감하기 쉽지 않지만 스마트폰, 자동차, 드론, 무기 등 전 산업에서 더 높은 수준의 보안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생명을 다루는 자동차에서는 한 단계 높은 보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보안 관련 국가 정책의 구심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모든 보안 정책을 국방부가 먼저 만들고 연방정부, 민간으로 내려가는 일사불란한 체계인 반면 우리나라는 체계적인 컨트롤타워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양자암호기술 같은 신기술 관련 평가인증제도 기준 상향도 주문했다. 김 교수는 "보안기술에 문제가 있으면 사고와 직결된다. 양자암호통신 관련 정부 평가인증은 애초에 기준을 높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