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아름다운서당 이사장·前노동부 차관
![[정병석 칼럼] 중국 외교사절의 오만과 그 역사](http://contents.dt.co.kr/images/202306/2023062302102269660001[1].jpg "[정병석 칼럼] 중국 외교사절의 오만과 그 역사")
중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한반도를 속방으로 지배한다는 의식이 있었고 조선이 취약한 상황에 처하면 가차없이 이를 악용하곤 하였다. 조선말의 원세개는 임오군란에서 청일전쟁에 이르는 기간 조선에 주재하며 총독 이상의 권한을 행세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3000여명의 군대를 조선에 파견했는데 이때 원세개가 참전했다. 원세개는 흥선대원군을 임오군란의 수괴로 지목하여 톈진으로 압송, 연금하며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1894년 청일전쟁 직전까지 앞장서 갑신정변을 제압하는 등 마치 조선 주재 총독 같은 역할을 했다.
당시 23세의 일선 지휘관에 불과했던 원세개는 속방체제에 방해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위협과 폭력으로 제거하고 조선 정부에 군림하여 자신의 직책인 '감국대신'을 넘어 마치 조선의 왕처럼 조선의 내정·외교에 간섭하였다. 1886년에 조선과 러시아의 밀약설이 제기되자 고종의 폐위를 추진하는 등 고종을 정치적으로 위협하며 차관도입, 해관통합 등 경제적 이익을 전횡했다.
원세개 외에도 조선 역사에서 그런 악행을 남긴 인물이 여럿 있었다. 정유재란 시기의 양호, 정묘호란 직전의 모문룡이 그런 중국인이었다. 1597년 명나라 요동사령부 휘하 조선 총책으로 부임한 양호는 조선군의 병권을 장악하고 국왕 선조와 대등한 위치에서 조선군과 조정대신, 백성들에게 군림하며 횡포를 자행했다. 심지어 선조에게도 위압적인 언행을 불사하고 조정 인사에 개입하며 대신들을 직접 처벌하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망후 왜군이 철군한 후에도 명나라 군대는 철수하지 않고 조선에 대한 직할 통치를 기도했다. 이러한 사태는 선조의 지나친 대명 의존심리와 존명의식에 주로 기인했다. 선조는 명나라에 대한 의존 심리가 유별났는데 조선군과 백성을 지나치게 불신하며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존립한 것은 오로지 명나라 지원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선조가 앞장서 명나라 장수들에게 굴종적인 저자세로 대하니 양호를 비롯한 명나라 관료들이 더욱 더 위압적으로 횡포를 부렸다.
모문룡은 요동지방이 후금에 장악된 명나라 말기에 요동 수복을 표방하며 1621년 압록강 인근의 조선 가도와 철산군 일대에 주둔했다. 당시 후금의 군사적 위세에 밀려 명나라 군대는 가도에 갇혀 요동 수복은커녕 운신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 균형 외교를 취하며 모문룡을 가도라는 좁은 섬에 가둬두고 거듭된 지원 요청을 따돌렸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집권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인조는 반정에 대해 명나라의 추인을 받기 위해 모문룡에게 과도하게 의존했고 모문룡은 이를 최대한 이용해 그간 갇혀있던 가도를 벗어나 평안도로 들어와 조선 총독 행세를 했다. 모문룡은 명나라 군대의 군량, 전마, 병선 등 온갖 군수품을 과하게 요구하며 조선이 요구대로 보급하지 않으면 지방의 수령들에게 직접 징수하고 양곡 창고를 약탈하기도 했다. 조선은 모문룡의 과도한 요구를 충당하기 위해 '모량'이라는 특별세를 토지에 부과하기 까지 했다.
당시 모문룡은 조선의 재물로 온갖 향락과 사치를 다했으며 명 군대와 명나라 유민의 약탈, 밀무역, 통행세 징수 등 횡포로 조선은 거의 초토화됐다. 실제 군사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허장성세로 후금을 수시로 위협하여 결국 정묘호란을 초래하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원세개, 양호, 모문룡 같은 중국 사절은 중국의 이익만을 대변하면서 속방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권한을 남용하고 사리사욕을 취했다. 더 나쁜 쪽은 나라의 운명보다 자신의 왕권 보호에만 매달려 과도하게 저자세로 일관한 고종, 선조, 인조 같은 임금이며 출세를 위해 당당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방조한 조선의 대신들이었다.
나라와 백성의 희생 위에서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이기적 정치인들이 중국 사절의 횡포를 초래했고 그 피해는 나라와 백성들이 고스란히 입었다. 과거 역사의 잘못에도 반성하지 못하는 행태가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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