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대로 하면 집에 간다." 이마트계열 3사의 창사 이래 첫 원톱체제를 결정한 신세계그룹의 2024년도 정기 임원인사가 남긴 메시지는 이 같이 요약된다. 신세계그룹이 전체 계열사 대표이사의 40%를 교체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쿠팡이라는 이커머스 공룡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유통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혁신 속도로는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사는 이명희 회장이 직접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단행한 이번 정기 인사의 가장 큰 변화는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의 원톱 수장 체제다.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대표가 물러나면서 이마트 새 수장이 된 한채양 대표이사 내정자는 3개 회사 대표를 겸직하게 됐다. 이마트 창사 이후 첫 외부 영입 인사로 주목을 받은 강 대표는 '정용진의 남자'로 불릴 만큼 정용진 부회장의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4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3사 대표를 맡는 한 대표는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 출신의 전략·재무통이다. 2019년부터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로 선임된 그는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2020년 709억 규모의 영업손실을 개선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222억원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런 만큼 이명희 회장은 한 대표에게 이마트의 대대적인 체질개선을 지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는 엔데믹과 함께 정상화된 내국인의 해외여행으로 인해 오프라인 채널의 유동 인구가 감소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이마트는 연결 기준으로 올해 1분기 13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전년 동기보다 60.4%나 줄었고, 2분기에는 적자 전환했다.
이마트에브리데이 역시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0.9% 줄어든 87억원에 그쳤다. 이마트24는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 5억원을 기록했다.
실적 부진은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8월 기준 이마트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17배로 낮아졌다. 지난 8월 전체 거래대금 중 15~30%가 공매도일 만큼 기업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쿠팡과 대조된다. 쿠팡은 이커머스 업계가 엔데믹과 소비침체로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올해 2분기 195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흑자 전환을 한 이후 4개 분기 연속 1000억원이 넘는 흑자를 냈다. 호실적에 주가가 상승하면서 올해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70배를 넘어섰다.
이러한 가운데 한 대표는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 손실 폭을 줄여 흑자전환까지 이룬 노하우와 신세계그룹의 전략실 상무·경영지원본부장·관리담당 부사장보 등을 지낸 경험을 살려 이마트의 비용 절감과 수익 극대화를 위한 대대적인 조직재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번 인사에는 온라인 사업에 대한 성과가 미흡하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강희석 대표가 이마트에 이어 온라인 사업부인 SSG닷컴에서도 물러났고, 공동대표였던 이인영 대표가 단독대표가 됐다.
최근 4년여 동안 SSG닷컴의 누적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9년 819억원에서 2020년 469억원으로 줄어드는 듯 하다가 2021년 1079억원, 2022년 1112억원으로 다시 늘어났다. 올해 역시 상반기에만 34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마켓을 인수할 당시 기대했던 SSG닷컴과, 이마트24, 이마트까지 교차 소비하는 시너지 효과 역시 미미했다.
신세계그룹이 이번 인사와 함께 SSG닷컴을 지마켓,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 등과 묶어 신세계그룹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 안에 두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시너지 극대화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로 분석된다.
이는 보유 유통채널들을 총 동원해서라도 온·오프라인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예전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엿보이는 행보다.
지마켓 인수 이후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진 것이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신세계그룹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신세계 유니버스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 역시 지마켓 인수 효과 극대화를 위한 고민이 담긴 행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 신설로 보다 더 강력한 시너지와 실행력, 신(新)성과창출을 도모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