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고려 거란 전쟁`이 반가운 이유](http://contents.dt.co.kr/images/202312/2023120602102269061002[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고려 거란 전쟁`이 반가운 이유")
반면 '고려 거란 전쟁'에선 보다 웅장하고 정밀한 전쟁묘사가 등장한다. 흥화진 전투에선 투석기의 작동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졌고, 통주 전투에선 검차진을 운용하는 고려군이 쇠도리깨, 장창 등의 병기를 활용해 기병을 격퇴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생생한 묘사였다.
물론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흥화진을 공격하는 거란군의 규모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귀주대첩 때 제작비가 집중투여된 거대 전투신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작품은 거란의 2차 침입과 3차 침입을 모두 다룬다. 두 전쟁을 아우르면서도 분량은 기존 대하 사극보다 짧은 32회 분량이다. 이야기를 최대한 압축한 것이다. 전개 속도가 빨라 쉴 틈 없이 몰아친다. 다만 거대 전쟁이라는 대서사시를 더 길게 그렸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은 있다.
양규 장군이 거란 침입 전에 흥화진을 어떻게 요새화했으며 7일간의 수성 기간 동안 어떤 전투가 있었는지, 귀주의 김숙흥은 어떻게 전쟁을 준비했는지, 이런 부분들이 더 자세하게 그려졌으면 작품이 더욱 풍성해졌을 것이다. 비록 이런 아쉬움은 있지만, 대하 정통사극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엔 충분하다. 제작비 부담 때문에 분량 늘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이 반가운 또 다른 이유는 배경이 고려라는 점이다. 우리 역사에 조선만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 사극 배경은 너무 조선시대에만 편중됐다. 조선시대가 익숙하기 때문에 만들기도 수월하고, 시청자 반응도 좋아서 조선시대 사극이 반복됐을 것이다. 그 결과 조선시대가 우리 역사전통의 모든 것인 것 같은 착시가 나타났다. 해외 한류 시청자들도 한국의 전통이라고 하면 조선시대만 떠올린다. 그래서 조선시대 복색에서 벗어나면 중국풍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극 시대배경의 확장이 절실했는데 '고려 거란 전쟁'이 등장한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조선과는 다른 고려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한국 전통문화를 더 확장하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또 우리 국민의 호방한 기운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우리 역사상 가장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시대였다. 무력도 가장 약했다. 병자호란 때는 이렇다 할 전투 한 번 못해보고 청나라에 굴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려 거란 전쟁 땐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인 거란 정예대병을 맞이해 고려군은 정면 대결을 펼쳤다. 2차 침입 땐 고려 주력군이 통주 전투에서 패퇴했지만 양규 등이 끝까지 거란군을 추격해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3차 침입 때는 강감찬의 고려군이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전성기 유목제국의 정예기병군단을 농업국가가 제압한, 세계사적으로도 희귀한 사건이다.
감감찬, 양규, 김숙흥 등의 고려군이 분전하는 이야기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뚫어주고 감동도 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소극적인 이야기만 보다가 이런 장쾌한 역사를 접하면 우리 자부심도 커질 것이다.
해외 시청자들도 한국에 보다 다양한 전통이 있고, 유목 기마병을 격퇴할 정도로 강건한 기상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일부 중국 누리꾼들이 우리 사극에 조선시대 이외의 복색이 등장할 경우 '중국문화를 훔쳤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런 드라마가 널리 알려지면 더 이상 훔쳤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재 '고려 거란 전쟁' 초반부에선 양규 장군이 조명되고 있다. 양규는 거란 40만 군사에 맞서 소수병력으로 흥화진을 지켜내고, 점령당한 성을 탈환하는 등 거란의 보급선을 끊고, 거란군을 공격해 고려인 포로들을 살린 우리 민족사의 대영웅이다. 이런 조선 이외의 시대 영웅들을 사극이 계속 조명해간다면 우리 역사의식이 더 고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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