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턴(상승 추세) 분위기 속 실적 개선에 힘을 쏟고 있는 삼성전자에 첫 파업의 전운이 짙어졌다. 삼성전자 노조가 실시한 쟁의 찬반 투표 결과 찬성률이 절반을 넘어서면서다.
노조는 일단은 파업 대신 평화적 쟁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8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 결과 전체 조합원 2만7458명 가운데 74%가 찬성해 파업 등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전삼노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에는 총 2만853명이 참여했고, 찬성률은 97.5%(2만330명)다. 반대는 2.5%(523명)로 나타났다.
쟁의 찬반 투표에서 찬성률이 50%를 넘으면 노조는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1969년 창사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파업을 겪은 적이 없다. 노조는 2022년과 2023년에도 임금 협상이 결렬되자 쟁의 조정을 신청해 쟁의권을 확보했으나, 실제 파업에 나서지는 않았다.
앞서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와 임금조정 협의를 거쳐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을 5.1%로 결정했다. 그러나 전삼노는 6.5% 임금 인상률, 유급휴가 1일 추가 등을 요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다만 전삼노는 당장 결근 등과 같은 파업에는 나서지 않을 전망이다. 전삼노 측은 "삼성전자 창립 이후 처음으로 쟁의행위를 시작한다"면서도 "오는 17일 경기도 화성 DSR 타워에서 1000여명이 모여 목소리를 평화롭게 사측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찬성률을 앞세워 노조가 언제든 파업 카드를 꺼내들 수 있는 만큼, 창사 이후 첫 파업의 가능성은 예년보다 높다.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는 AI(인공지능) 열풍 속 글로벌 패권 경쟁이 한창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은 반도체가 곧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조 단위의 천문학적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산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업황 부진으로 지난해 약 15조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업황이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SK하이닉스, 인텔, 마이크론, TSMC 등 글로벌 경쟁사들과의 견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반도체 사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라는 악재를 마주한 셈이다.
실제 성과급을 둘러싼 불만이 거세지며 전삼노의 조합원 수는 창립 5년 만에 2만명을 넘어서는 등 급증하고 있다. 전삼노 가입자 수는 이날 오전 8시 기준 2만5662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12만명) 중 21%를 차지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DS부문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삼노에 이어 두 번째로 구성원이 많은 DX 노조는 전체 노조원 6210명의 약 3분의 1(33.6%)만 찬성함에 따라 쟁의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5노조는 자체 홈페이지에 찬반투표가 부결됐다는 사실을 공지하고 쟁의행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삼노는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인 전 조합원의 과반 찬성률을 확보 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양대 노조가 갈라서면서 삼성전자 첫 쟁의행위는 다소 힘이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편 삼성전자 측은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언제나 대화의 창을 열어두고, 노사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