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농수산물 도매시장법인은 사모펀드와 대기업 등이 진출해 농산물 가격 등락과 무관하게 20% 넘는 영업이익률을 챙기는 독과점 체계라 가격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유통 수수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법 개정을 추진한다.
8일 관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도매법인) 지정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대부분은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과 같은 공영도매시장을 거쳐 유통된다. 산지에서 농수산물을 생산한 농·어민들이 도매시장법인을 통해 경매로 판매하면, 생산가 고려 없이 무조건 최고가를 제시한 중도매인이 낙찰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도매시장법인은 경매를 대신 진행해주는 대가로 생산자로부터 4~7%의 수수료를 챙긴다. 비싸게 팔리면 수수료가 더 커지는 구조다. 중도매인은 경매에서 낙찰받은 물건을 대형마트나 도·소매시장에 공급하고, 소비자는 이렇게 유통된 과일을 구매한다.
애초 이 체계는 농민들이 도매 시장 상인들로부터 '가격 후려치기'나 '대금 떼먹기' 등의 피해가 발생하자 당국이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 당국은 도매시장법인에 전권을 줬고, 생산자는 도매시장법인을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법으로 정했는데 이 체계가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현재의 소수 도매시장법인의 독과점 체제로 굳어버렸다.
국내 최대 농수산물 거래 시장인 가락시장의 경우 5개의 도매시장법인(중앙청과·서울청과·동화청과·한국청과·대아청과)이 전체 시장 경매를 대부분 맡는데, 이들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020년 24%, 2021년 22% 등으로 2%대인 도매·소매업 평균 영업이익률을 크게 상회한다.
특히 이 도매법인들은 농업과 관련이 없는 건설사, 철강사 등이 소유하고 있다. 중앙청과는 서영배 회장과 서 회장이 소유한 태평양개발 자회사가, 서울청과는 고려제강, 동화청과는 신라교역이 주인이다. 한국청과(코리아홀딩스)와 대아청과(호반프라퍼티·호반건설)도 마찬가지다. 중앙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또는 해양수산부장관과 협의해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범위에서 지정 유효기간을 설정해 지정한다.
하지만 지정 기간이 만료된 도매시장법인의 재지정 요건은 법에 명시되지 않아 기존 업체들이 영업을 계속 이어가는 상황이 되풀이되면서 자연스럽게 독과점이 형성됐다.
가락시장의 5개 도매시장법인은 시장 개설 후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2018년 16년간 수수료 담합을 벌인 것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16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적도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출하자의 선택권 제약, 독과점 시장구조에 따른 과도한 수익창출 등의 문제가 꽤 오랫동안 지적돼 왔지만 전혀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지난해에도 농산물 도매시장 출하 농업인의 권익을 증진하겠다며 일부 개선을 시도했지만 독과점 구조에 칼을 대는 수준까진 아니었다. 도매시장에서 거래에 대한 불만·분쟁 발생 시 조정 역할을 하는 도매시장 민원 도우미(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하고, 지자체에 도매시장 분쟁조정위원회 설치·운영을 의무화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이번에 공정위와 농식품부는 소수 도매시장법인의 장기 독과점 구조가 형성될 우려가 크다고 보고 관련 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도매시장법인 재지정 절차를 법제화하고, 신규 법인 진입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평가 방식을 손보겠다는 계획이다.
도매시장법인의 독과점 구조가 개선되고 경쟁이 활성화되면 수수료 인하 등의 효과와 함께 최근 기록적인 가격 상승률을 보이는 사과와 배, 귤 등 과일 가격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가격안정 긴급자급을 지원해 사과와 배 등 일부 농산물의 소매가격은 낮아졌지만, 도매가격은 되레 더 높아지거나 현상유지 정도로 가격이 유지되고 있어서 도매 독과점 개선이 시급한 상황으로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