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인도남아시아팀 전문연구원은 지난 27일 세종시 국책연구단지에서 본지와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현장·연구 경험이 응축된 '인도 진출 설명서'를 아낌없이 공유했다. 하나의 나라가 아닌, 하나의 대륙으로 바라봐야 인도 현지에서 겪을 수 있는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22개나 되는 공용어를 사용하고, 무슬림과 힌두교도, 크리스찬과 시크교도가 뒤섞여 살아가는 복잡한 나라. 대도시 중심 지역은 마천루가 하늘 높이 뻗어있지만 전체 인구의 70%는 한국의 1950년대와 다름없는 농촌 지역에서 거주하는 나라. 중앙 정부의 허가를 받아도 지방 정부에서는 그 약속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 김 연구원이 이제까지 관찰해 온 인도다.
김 연구원이 처음 인도와 만난 건 한국외국어대에서 인도지 전공을 선택하면서다. 이후 여러 현장과 연구원직을 거쳐 KIEP에 뿌리를 내렸다. 십여년 전만 해도 그저 인구 많고, 땅 넓은 개발도상국으로만 여겨졌던 인도는 최근 미국, 중국에 이은 G3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협정이 우리나라에서도 발효되면서, 산업 밸류체인에서도 인도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 달 1일까지 마무리되는 인도 총선과 이후의 변화에도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김 연구원을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김 연구원은 "아직 우리는 인도에 대해 잘 모른다"고 운을 뗐다. 우리나라가 인도와 수교한 것은 1973년이지만, 당시에는 사회주의가 강해 관심이 적었다. 1991년 인도가 경제개혁을 단행한 이후 조금씩 접점이 늘기 시작했고, 교류가 활성화된 건 2010년 FTA(CEPA)가 발효되고 난 이후부터라는 설명이다.
그는 "인도는 그간 우리 기업이 진출해왔던 중국이나 동남아 등과는 많은 점에서 특질이 다르다"고 말했다. 지방정부의 독립성이 강한 인도는 진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행정 착오나 규제를 겪는 빈도가 높고,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 능력을 갖춘 대기업이 주로 진출해왔다는 것이다. 싼 인건비를 좇아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공장을 세울 수 있었던 중국·베트남을 생각하고 덤벼들었다 큰 코 다친 회사들도 많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일찍부터 인도 시장에 진출해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의 활동은 미약한 실정이다.
김 연구원은 "'인도를 공략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주(州)를 공략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승산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주에 따라 언어와 종교, 인종 등이 다르지만, 무엇보다 산업 기반과 인프라 수준에서 천차만별이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인도 서남부 지역은 공업이 발달해 중산층이 쑥쑥 크고 있는 반면, 북부 지역은 아직까지 대부분 농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서남부 지역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기존 인도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방법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북부 지역이라면 지방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생산·유통에 필요한 도로·교통·수도 등 인프라를 얼마나 언제까지 확보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주별 공략'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게 김 연구원 조언이다. 그는 "보통 우리나라 정부 인사들은 중앙 정부 위주로 MOU 등의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인도는 생각보다 중앙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많은 만큼, 기업 진출이 용이한 지방 정부와 커넥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보증으로 안전성이 구축돼야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도 활발하게 인도로 진출해 생태계를 구축하고,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독일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인도 진출에서 한발 늦은 편이다. 지난 5년간 인도 공적개발원조(ODA)의 57%를 일본이 차지했고, 다음으로 독일이 26%다. 한국은 10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특히 일본은 ODA의 대부분을 철도·교통 인프라에 투자했다. 김 연구원은 "드넓은 인도 대륙을 달리는 철로와 기차에 대한 원천기술과 주요 부품을 모두 '일본산'으로 귀속시키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래도 기회는 있다. 김 연구원은 "인도는 한국이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등 산업에서 지닌 역량에 주목하고 있다"며 "기술 협력으로 산업 기반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대신 장기적으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OTRA에 따르면, 인도는 2030년까지 500GW 규모의 재생에너지 설치 용량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금융과 인프라 측면에서 자체 해결에 어려움이 있어 우리나라처럼 앞선 기술을 가진 국가와 협력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천명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3번째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점쳐지면서, '제조업 솔루션'에 특화된 우리나라 기업이 사업 기회를 노릴 여지가 더 많아질 것으로 바라봤다. 김 연구원은 "인도는 7% 이상 고속 성장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제조업 여건이 부족해 높은 수준의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며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고용해주겠다는 해외 기업에 어느 때보다 친화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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