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스타트업 지분 인수로 기술 이전
저가 EV 노하우 보유한 中과 협력 늘어나
현대차, 전동화 선제적 대응…기술 자체 개발
전동화 후발주자인 전통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정체기)을 틈타 중소 전기차 업체들을 공략하고 있다. 선제적 기술력은 확보했으나 자금난에 휩싸이는 업체들에 투자해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등 전기차 개발을 함께 하는 형식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이미 3~4년은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선도업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인수합병(M&A)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판매량 세계 2위인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은 최근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에 2026년까지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리비안은 테슬라의 라이벌로 촉망받았으나,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올 1분기 14억5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폭스바겐은 리비안의 지분을 확보하고, 합작회사를 설립해 첨단 소프트웨어를 갖춘 차세대 배터리로 구동되는 차량을 개발할 계획이다.
테슬라와 중국을 중심으로 전동화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자 전기차를 처음부터 직접 만들기보다 합작회사를 설립하거나 지분을 매입하는 등 돈으로 기술을 사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전통 완성차 업체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에서도 활발하다. M&A로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텔란티스는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링파오(립모터) 지분을 21% 매입했으며, 합작회사 립모터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연내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호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완성차사의 대(對)중 협력 변화' 보고서에서 "중국 전기차 사업에서 높은 강도의 경쟁이 지속되면서 자금난에 직면할 기업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자금난을 겪는 기업 중 기술 노하우를 보유한 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모색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폭스바겐 등과는 달리 현대자동차그룹은 자체 개발로 전동화 기술을 내재화 하는 중이다.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포티투닷(42dot) 등 그룹사를 중심으로 자체 연구소에서 차세대 배터리, 파워트레인, 자율주행 기술 등을 개발하는 식이다.
현대차그룹은 그러면서도 테슬라 못잖은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6개월 여 동안 진행된 전 세계 자동차 시상식에서 전기차 모델이 13개국 48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어'였으나, 전동화 시대에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빠른 판단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2023년 신년사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최고의 인재 영입과 기술 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글로벌 전기차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전동화 체제 전환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회사 조직을 전동화 등 미래 모빌리티에 최적화된 빠른 의사결정 구조와 기술 고도화가 가능하게끔 재배치 중이다. 그룹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인재를 한곳으로 모으고, 그룹사에 흩어진 수소 관련 역량을 결집하는 등 전사적으로 전동화 전환에 대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포트폴리오의 조화가 좋으며, 전기차로 옮겨 탈 준비가 잘 돼 있는 회사 중 하나"라며 "도요타·폭스바겐 등 글로벌 톱 티어 완성차 업체는 탄탄한 자금력과 쌓아온 노하우가 있기에 캐즘을 현명히 대응하면 치고 나갈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