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 곳은 많은데 나라곳간은 텅텅 비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에만 25조원의 금융과 기금을 투입해야 하는 등 서민 복지와 산업 경쟁력 제고 등 돈 쓸 곳은 넘쳐난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이 바닥 나 이미 올해 상반기에만 한국은행에서 90조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을 빌려 썼다. 지난해 국고채 이자비용만 20조원을 넘었다. 올해 세수는 벌써 작년보다 9조원 줄어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7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대정부 일시 대출금·이자액 내역'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정부가 한은에서 일시 대출하고 상환하지 않은 잔액이 19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6개월간 91조6000억원을 빌렸고, 이 중 71조7000억원만 상환된 것이다.
상반기 누적 대출 규모는 코로나19가 발생했던 2020년 상반기(73조3000억원)와 대규모 세수펑크가 발생한 지난해 상반기(87조2000억원)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정부는 누적 대출에 따른 이자액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1291억원을 지출했다.
한은의 대정부 일시 대출 제도는 세입·세출 시차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급전을 융통하는 수단이다. 정부가 '한은 마통'을 많이 이용했다는 것은 써야할 돈이 벌어들인 세금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는 의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국세수입은 151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조1000억원 감소했다. 기업 실적 부진의 영향으로 법인세가 15조3000억원 줄어든 영향이 컸다. 세입예산 대비 진도율은 41.1%로 평년(47.0%)에 비해 5%포인트 이상 밑돌아 '조기경보'를 발령했다.
급속도로 불어난 나랏빚에 총지출에서 이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8년 만에 3%대로 올라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결산 기준 국고채 이자비용은 19조198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 총지출(610조6907억원)의 3.1%를 차지한다. 2015년(3.0%) 이후 처음 3%대로 진입했다.
국고채 발행 잔액은 2019년 611조5000억원에서 2021년 843조7000억원, 2022년 937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998조원까지 늘었고, 올해 4월 기준 발행 잔액은 1039조2000억원에 달한다.
빚이 는다고 정부가 민생 지출을 줄일 수는 없다. 정부는 지난 3일 소상공인 50만명에 최대 20만원씩 전기료를 지원하는 등 총 25조원 규모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반기에만 긴급 민생안정자금 1조원을 투입한다. 소상공인 재기를 위한 새출발 기금 규모는 30조원에서 40조원 이상으로 늘리고, 대출 상환 연장도 14조원 규모로 추진한다.
이런 재정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의무·경직성 지출까지 구조조정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는 최근 '주요국의 의무·경직성 지출검토 사례' 연구용역에 나서는 등 경직성 재량지출 또는 법적 지출의무가 있는 의무지출에서도 재정 절감의 여지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수 정부가 들어와 여러 감세 정책을 펴면서 재정 여건이 악화된 측면도 있다"며 "재정의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해 세수 기반을 너무 악화시키는 정책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최상현기자 hyun@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