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3일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까지 최종 승인하면서 우리나라도 가상자산 현물 ETF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의 시가총액이 2700조원을 넘어서고,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도 73조원까지 불어났지만 여전히 금융당국은 현물 ETF를 중개조차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2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상자산을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김 후보자의 발언이 가상자산에 대한 금융당국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날 후보자의 발언이 결국 금융위의 향후 정책 방향이지 않겠냐"라며 "해외 시장을 주시하고 있지만, 현물 ETF나 법인의 가상자산 실명계좌 허용 등에 대한 새로운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융위는 지난 1월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을 때에도 자본시장법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며 국내 증권사가 해외 상품을 중개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시장 변화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당국이 기존의 보수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국내 시장의 '소외'를 자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물 ETF뿐 아니라 코인베아스에 투자하는 펀드조차 허용하지 않는 등 가상자산과 관련된 비즈니스 전체를 막으면서 가상자산 생태계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투자운용사 관계자는 "현물 ETF는 가상자산을 장내 시장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며 "운용사에게는 새로운 유형의 기초자산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일이고 가상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간접 투자가 가능해 지는 만큼 투자자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국내 운용사가 가상자산 현물 ETF 등 지수에 대한 스터디를 끝내 허용만 된다면 상품을 내는 건 일주일 만에도 가능한 수준"이라며 "결국 당국의 입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시장 수요도 충분한 상황이라고 봤다. 이미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규모 자금 유입이 확인됐고,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 이후 불과 6개월만에 이더리움까지 승인할 정도로 시장의 요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소 가운데 국내 원화거래소 업비트가 거래규모 기준 5위에 오를 정도로 국내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관심도도 높은 상황이다. 특히 이같은 거래량은 당국이 법인의 가상자산 실명계좌를 막은 상황인 만큼, 현물 ETF 승인 이후 연기금과 금융업계 등 기관 투자자의 자금까지 더해지면 시장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시대적인 흐름을 고려해 금융당국 역시 결국 가상자산 ETF를 승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도입 시점을 조금이라도 앞당겨야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수탁, 거래소 선정, 전산 시스템 등 가상자산 ETF 도입에 따른 주요 이슈들이 많아 당국이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당장 도입이 어렵다면 미국처럼 선물을 먼저 허용하며 스탠스를 바꿔 나가는 방안이라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등 해외 시장을 무조건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시대적인 흐름에 뒤처지고 있는 것은 인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복 서강대 교수는 "지금 당국은 2017년 가상자산 관련 긴급 대책에서 내놨던 기존의 정부 입장과 '정책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있다"며 "누구도 이를 뒤집을 자신이 없어 서로 미루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도 가상자산을 인정하지 않던 SEC가 시장 변화를 받아들여 결국 가상자산 ETF까지 허용하고, 가장 많은 자금을 유치했다"며 "해외 시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상자산'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지금이라도 시장 참여자나 투자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남석·신하연기자 kns@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