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미디어 혁신이 방치된 가운데 방송통신위원장 청문회는 정책과 산업이 실종된 채 여야 공방으로 점철됐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생태계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이들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크라우드스트라이크발 정보기술(IT) 대란에 대한 조치 등 문제가 산적한데, 정책과 산업 진흥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가 24일 오전 10시부터 열렸다. 청문회는 25일까지 양일간 열린다.
이날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는 국내외 사업자간 망 사용료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향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자는 "국내 OTT가 해외에 진출하는 데 가장 필요한 정부 지원이 무엇인가"라는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의 질문에 "넷플릭스의 국내 연간 매출액이 7500억~7700억원인데, 망 사용료를 내고 있지 않다"면서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는 (망 사용료)내야 해 불평등한 만큼 이를 잘 살피겠다"고 말했다.
웨이브와 티빙간 국내 OTT 합병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너지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구글, 넷플릭스 등 해외 OTT는 망사용료를 내지 않아 비대칭적 손해를 보고 있다"며 "방통위원장이 되면 이 부분을 특히 주목하고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사 광고 규제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OTT로 인해 국내 주문형비디오(VOD) 매출이 20% 감소했고 최근 넷플릭스는 광고요금제도 출시했다. 국내 광고 시장은 규모가 줄었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방송광고 심의에 따라 지상파, 레거시 매체에 대한 광고 규제가 많다"고 지적하자 "공감한다"고 말했다.
1000만 구독자를 둔 유튜버 '쯔양'에 대한 '사이버 레커'들의 협박 논란에 관해서는 "최근 쯔양 사태를 보면서 OTT, 유튜브가 긍정적 역할도 하지만, 명예훼손 등은 본인의 자부심이나 삶에 대한 욕구도 포기할 수 있게 하는 만큼 큰 범죄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늘어난 불법스팸 문자에 대해서는 "문자를 중계하는 업체가 진입할 수 있는 기준이 낮았는데 높아졌다"며 "스팸문자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첫날 청문회에서는 평소 극우 성향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이 후보자에 대한 발언과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등도 쟁점으로 올랐다. MBC 기자 출신인 이 후보자는 이라크전 등을 취재한 최초 여성 종군기자 타이틀을 지녔고, 보도본부장, 대전문화방송(MBC) 사장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MBC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징계와 해고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MBC 기자회가 처음 제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올스톱 된 방송·통신 현안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모두발언 등을 통해 방송·통신산업 현안보다 공영방송 논의에 힘을 실었다. 그는 "공영방송이 편향성 논란의 중심에 서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며 "공영방송이 이름에 걸맞게 역할을 재정립해 공영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둘러싼 정쟁에만 또다시 몰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 업계는 △MS발 IT망 대란 사태 후속 조치 △ 방송법 등 미디어 규율체계 개선 △ OTT 등장으로 인한 유료방송 성장동력 둔화 △ 홈쇼핑 송출수수료 갈등 △ 망 사용료 논의 △ 단통법(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 폐지 △ 구글·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등을 현안으로 꼽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미디어 빅테크가 국내 미디어 산업 재원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평적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 시장 변화가 촉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24일 야당 의원과 언론노조 조합원들의 항의를 받으며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