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공격 급증에 보안 시급
RPKI 도입· 확산 중요도 증가
미국 70% 육박… 韓 0.27%뿐
인터넷주소자원 공개키기반구조(RPKI) 도입과 확산이 시급하다. 급증하는 사이버공격 속에 인터넷 경로를 보호하면서 해외 주요 네트워크와 원활하게 이어지기 위해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적용률은 주요국들에 한참 뒤처진 상태다.
8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한국의 RPKI 적용률은 0.27%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국내 진출한 글로벌 기업 등이 적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69.4%), 호주(49.1%), 일본(39.6%) 등은 물론이고 중국(21.9%) 베트남(16.1%), 브라질(2.1%) 등과도 차이가 크다.
인터넷서비스제공사(ISP)와 기업·기관 등 주요 네트워크(AS) 간 인터넷 경로는 큰 틀에서 경계게이트웨이프로토콜(BGP)로 정해진다. 이들의 라우터를 통한 외부 연결 시 경로 설정 원칙으로, 가장 자세한 경로와 가장 짧은 경로를 우선하도록 만들어졌다. 연구소 등의 상호 신뢰로 연결이 시작되고 BGP가 만들어진 인터넷 초기엔 경로 보안이 고려되지 않았으므로, 전달 받은 경로 정보의 오류와 위·변조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여전히 남아있다.
ISP 등의 관리자가 각각 바로잡는 게 가능하나 결국 실수가 일어날 수 있고, 또 BGP 특성을 악용해 경로에서 특정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트래픽을 탈취하는 사이버공격(BGP하이재킹)도 벌어지고 있다. 2021년 전국적인 KT 인터넷 서비스 장애 때는 라우터 교체 중 경로 설정 실수가 있었고, 2022년 카카오 포털·지도·QR체크인 등 접속장애 원인으로 BGP 하이재킹이 지목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적으로 약 180건의 인터넷 중단 사태를 초래했다.
RPKI는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는 인증 체계다. AS 식별번호나 IP 등 인터넷주소자원과 해당 보유기관 정보에 대해 공개키기반구조(PKI)로 전자서명 인증서(ROA)를 발급하고, BGP 경로 전파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검증하는 보안기술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정보 통제 목적으로 BGP 하이재킹을 시도했으나 X(옛 트위터)가 RPKI 인증으로 막아내기도 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지난해 3월 '국가사이버보안전략'에 BGP 취약점 해결을 전략 목표로 명시하며 RPKI 등 보안 라우팅 기술의 확산에 나섰다. 네덜란드 정부는 같은 해 5월 모든 정부망에 RPKI를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내 RPKI 도입은 더딘 상황이다. 향후 글로벌 RPKI 확산에 따라 해외 네트워크 연결 시 인증 관련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KISA는 우선 도입 대상인 통신 3사 등 ISP들과 협력해 RPKI를 확산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를 지원할 테스트베드와 인증 관련 시스템 구축도 계획하고 있다. 다만 과기정통부와 KISA가 내년도 예산안에 관련 비용 100억원을 신청했으나 전혀 반영되지 않아 어려움이 예상된다.
박정섭(사진) KISA 인프라보호단장은 "국내 ISP들이 자체적으로 보안을 철저히 해왔지만 세계적으로 더 안전한 체계가 요구되고 있다. ISP들은 운영 중인 서비스가 라우터 구성 변경으로 장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므로 미리 안정성을 확보해주길 바라는 상황"이라며 "시스템 구축과 인력 확보가 바로 되는 게 아니므로 RPKI 준비가 더 늦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팽동현기자 dhp@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