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협의체가 의료계의 강경한 입장에 막혀 출발도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야가 9일 한 목소리로 의료계에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요청했다. 매번 대립만 해온 여야가 모처럼 대화를 통한 해법모색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따라 여·야·정 협의체가 우선 가동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의료계의 불참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갖고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 참여 독려를 위해 노력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추 원내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협의체) 필요성에 대해 함께 공감했고, 제일 중요한 것이 의료계의 참여 문제"라며 "정부여당이 의료계 참여를 유도해낼 수 있는 대화를 활발히 해줬다면 좋겠다고 해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활발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도 "정부가 의료계를 협의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진정성과 설득력 있는 제안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며 "야당도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한 만큼 이와 관련한 문제 해결에 추석 전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의료계를 협의체로 끌어올 유인이 없다. 의료계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포기할 것을 협의체 구성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고, 정부 역시 그것만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의료정상화를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2025년을 포함해 모든 증원을 포기하고 현실적으로 논의가 가능한 2027년 의대 정원부터 투명하고 과학적 추계방식으로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며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등 국민 폐해가 확실한 정책 모두를 폐기하고, 의료 정상화를 위해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2025년도 의대 정원은 오늘부터 수시 접수를 시작하고 교육부에서도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그 이후는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갖춘 합리적인 제안을 한다면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전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는 여야의 반응은 갈렸다. 여당은 의료계의 '대승적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까지 포함된 협의체이므로 의료계 입장에서 충분한 발언과 논의가 보장된 구조"라며 "서로 대화의 전제 조건을 걸거나 의제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야당은 정책 결정자인 정부여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 여·야·정 협의체 가동 가능성에 대해 "의료계가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는다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다를 게 뭐가 있나"라며 "대통령 사과, 책임자 문책 등 정부와 여당의 진정성 있는 조치들이 있어야 테이블이 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혜인기자 hye@dt.co.kr
추경호(왼쪽부터) 국민의힘 원내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